'혹시나'가 '역시나'였습니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3일이 지났지만, 참으로 세비가 아깝습니다.
볼썽사나운 여야의 충돌로 막이 오르더니, 지난 3일 동안 '김건희·이재명 블랙홀'이 된 국감이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국민이 바라는 민생을 위한 정책 질의는 없었습니다.
국감은 의회가 정부의 한 해 나라 살림살이의 잘잘못을 꼼꼼히 따져 바람직한 국정 운영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의 행정부 주요 정책과 예산 집행을 따져 묻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생산적 논의의 장입니다.
야당으로선 수권 능력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무대고, 의원 개개인으로선 의정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입니다.
하지만 국감에 돌입한 여야의 태도를 보면 국감을 하자는 것인지, 정쟁 싸움을 하자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이번 국감은 우려했던 대로 극한 정쟁의 무대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온통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공방으로 얼룩지더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야는 예고했던 대로 연일 작정한 듯 극한 정치 공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내에 이른바 '김건희 심판 본부'까지 구성하면서 모든 상임위를 동원해 명품 가방 의혹뿐만 아니라 공천 개입, 주가 조작, 부산엑스포 유치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파상 공세를 벌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정밀 조준하면서 공세를 펴는 맞불 전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감 파행과 막말은 기본 옵션으로 따라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감에서 상식을 벗어난 장면까지 속출하면서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첫날,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선 민주당 의원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관용차를 당사자 동의 없이 제 맘대로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5000만원으로 올려놓고 질의를 하는 비정상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허위 매물 등록이 가능한 실태를 지적하려는 취지였다곤 하지만,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었습니다.
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선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정부 들어 방송통신위로 파견됐던 사정 기관 공무원 17명을 불러내 한 줄로 서게 한 뒤 "여러분은 정권의 도구"라고 싸잡아 매도하는 장면도 벌어졌습니다.
해마다 무용론이 뒤따르는 국감이지만 올해는 유독 정치적 공방이 더 뜨겁습니다.
정쟁에 묻힌 나머지 상임위 별로 어떤 정책 현안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나옵니다.
하지만 26일 간의 국감 기간 동안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기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안팎으로 매우 엄중합니다.
의·정 갈등은 물론 어려운 서민 경제, 국제 정세 불안 등 들여다봐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국감에서 정쟁이 아예 없을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17개 상임위원회 전부 '김건희·이재명 블랙홀'에 빠지라고 국민이 세비를 내는 게 아닙니다.
당리당략의 충돌에서 벗어나 국민이 바라는 민생의 현안을, 정책 질의를, 행정부 감시 등 국회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감사는 없고, 당파와 정쟁에 매몰돼 소모적인 싸움만 하라고 국민이 투표로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은 게 아닙니다.
혈세 낭비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정책 국감을 보여주십시오.
박진아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