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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회 [뉴스토마토프라임] 국장의 명이 명을 재촉하다_명태균 TF 취재 비하인드2
[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세상 평화로운 9월 초의 금요일 오후, 국장이 핵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창원국가산단2.0 후보지 지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명태균이 측근들을 동원해 사전에 땅을 샀다는 믿을만한 제보가 있다, 이에 창원산단 후보지 103만평 등기부등본을 다 뗀다, 등본에서 확인되는 거래내역을 엑셀로 만든다, 현장 취재를 통해 현지 분위기와 선정 과정 등을 취재한다, 이 모든 작업을 4~5일 안에 끝내 보고해야 한다, 세 명의 인력으로!’(제 명에 못 산다~.)

 

필사적으로 삽질하여 산을 옮겼으나 또 다른 거대한 산 앞에서 충격에 빠진 남자 셋의 모습을 챗GPT가 그렸다.

 

전날 피폭으로 초토화된 오김배(오승훈, 김충범, 배덕훈)는 토요일 아침, 만신창이 몰골로 회사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명태균을 쫓으라는 국장의 명은 명을 재촉하는 개고생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국장의 지시는 4대강 사업을 1주일 안에 끝내라는 것이며, 경부고속도로를 7일 안에 다 깔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목젖까지 차고 올라왔지만 차마 하지는 못했습니다.

누구든 국장의 얼굴과 몸집을 보면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국장은 특히 보안을 강조했는데, 다들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이미 실어증 상태였기 때문에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삽 하나를 들고 큰 산 앞에 선 우리는 ‘현타’를 느낄 겨를도 없이 당면한 일을 당면해야 했습니다.

 

급선무인 등기부등본 발급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첫 번째 난관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등본을 발급받으려면 103만평에 대한 지번을 일일이 파악해야 하는데 어디에도 대상지 지번은 나오지 않았던 것. 마치 첫 삽질을 했더니 돌산이라 삽이 튕겨져 나간 형국이었습니다.

(진짜 돌겠네~.)

‘등기부등본 전에 토지대장을 떼봐야 하나?’ 옮겨야 할 산이 하나 더 늘어난 듯한 느낌에 암담함이 엄습했습니다.

말 그대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한참 인터넷을 뒤지고 있는데 후덕한 덕훈씨가 말했습니다.

 

“앗 선배~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음지도라고 사이트를 활용하면 번지를 파악할 수 있어요. 예전 취재할 때 활용했는데 도움이 되네요. 하하.”

 

단독이라는 목표를 쫓다 기진맥진한 기자 3명의 웃픈 모습을 챗GPT가 그렸다.

 

그의 말대로 토지이용계획을 열람할 수 있는 이음지도에서 창원 의창구를 검색한 뒤 왼쪽 용례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항목에 체크하니 산단 후보지가 다른 색으로 구분됐습니다.

(후보지는 지난해 정부 발표 직후인 3월17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 다른 색 부분을 확대하니 숨어있던 번지 수백 개가 화면에 동시에 노출됐습니다.

덕을 쌓은 덕훈씨 덕분에 우리는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참 좋기도 하겠다~.)

 

“이제 각자 하나씩 행정구역을 맡아 보이는 지번을 엑셀에 먼저 기입해 이걸로 등본을 발급받으면 되겠네요.” 충직한 충범씨가 말했습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어.’ 모두 안도 하고 있는 순간~. 또 다른 시련이 닥쳤습니다.

지도를 움직이면 설정해놓은 영역 표시가 사라져버려서 해당 후보지인지 알 수가 없게 돼버렸던 것. 이음지도인데 이음이 안 되는 꼴이었습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모니터 두 개를 띄워놓고 대조해가며 번지를 기입해야 하는데 출근자가 없던 토요일 오후 모니터를 하나 더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도를 움직이다 영역 표시가 사라지면 다시 체크해 영역 표시를 해가며 하나씩 번지를 기입하는데 마치 매직아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가수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가사가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가사의 참뜻을 이제야 알겠구나~.)

 

지번이 나온 지도를 출력해 오려 붙여 만든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일대 대형지도. 창원국가산단2.0 대상지다.

누락을 피하기 위해 하나씩 지번을 소거해가며 기입했다.

(사진 오승훈)

 

그렇게 일요일 저녁까지 토끼눈을 해가며 리별로 번지수를 기입했습니다.

어느덧 주말이 저물었습니다.

내리 이틀 동안 셋이서 추출한 지번은 1700여개 남짓. 총 4개 리에 한 리마다 1000여개 정도 지번이 나온다고 가정할 때 아직도 2000개 넘은 지번이 남은 상황. 대개 전답이나 산이라 지번당 평균 면적이 넓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잘게 쪼개진 지번이 많은 주거지 위주였다면 지금까지도 번지수를 찾고 있었을 테니까요.

 

사실 남은 작업량보다 우리를 더 찜찜하게 만든 것은 지번이 누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지번이 보기 좋고 적기 좋게 1234로 순차적으로 넘버링이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지번 1241-1 옆에 1241-2가 나오는 게 아니라 1243이나 1250이 나오는 등 들쑥날쑥이었던 탓에 지도를 보고 움직이면서 하나씩 기입하다가도 혹시나 빠진 게 없는지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시간이 더 지체됐습니다.

집에 가서도 작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습니다.

(집에 갔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느낌적인 느낌~.)

 

늦은 밤, 프린터로 지번이 나온 지도를 출력하고 이를 오려 붙이며 대형지도를 만든 뒤, 다시 펜으로 하나씩 소거해 지번을 입력했습니다.

누락을 막기 위한 방편이자 온몸을 이용한 촘촘한 '삽질' 그 자체였습니다.

만든 지도를 방바닥에 펼쳐 놓으니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땅덩어리는 결코 작지 않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아울러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인공지능이 아직은 '삽질'을 대신 해주지는 못하니까요.

 

월요일 오후, 지번 추출을 절반 가까이 끝낸 시점이었습니다.

2명은 지번을 마저 찾고 덕훈씨가 쌓인 지번을 바탕으로 등기부등본 출력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번으로 등본을 발급받으려던 덕훈씨가 소리쳤습니다.

“선배~~. 큰일 났어요.” 큰일은 이미 나버렸는데 또 뭐가 큰일이라는 것인가. 짐짓 침착하게 그의 자리로 간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신이시여! 불쌍한 우리를 정녕 버리시나이까.(to be continued…)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

 

newstomato.com |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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