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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IT "게임도 노벨문학상? 감동 넘어 반향 줘야"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여기에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당신을 '너'라고 부르며 비극의 막을 엽니다.

한 인물의 관점으로 바라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고, 다른 누군가의 시점이 그 다음 죽음을 소개합니다.

어느새 또 다른 인물의 사연이 앞선 두 사람과의 접점을 보여주며, 당신의 이야기를 차츰 우리 모두의 것으로 넓혀갑니다.

 

이쯤이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떠올린 분이 적지 않을 텐데요. 실은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 속 이야기 얼개를 떠올리며 적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노예가 아닌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한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담은 명작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입니다.

 

15일 광화문 교보문고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기념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사회 반향 지속시킬 수 있어야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인 문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게임계에선 게임 관련 종사자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의 시선은 포크 록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2016년으로 향합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그가 인간의 사회적 조건과 종교·정치·사랑 등을 노래했고, 그의 노랫말이 지속적으로 서정시 분야 서적으로 출판된 점 등을 수상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 같은 반향을 일으키는 게임이 나올 수 있는지 짐작해보기 위해 올해로 눈을 돌려, 한강 작가의 수상 배경을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한림원은 '소년이 온다'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했는데요.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게임 제작자의 수상 가능성을 엿봤습니다.

김 교수는 "한강 작가는 표면적인 묘사 뒤에 정신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알레고리로도 높이 평가받았는데, 2000년 첫 출시된 '심즈'도 현대인의 일상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줬다"면서도 "게임이 여기에 그치면 노벨상 수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강의 소설은 1980년 5·18 희생자가 태극기에 싸이는 모습을 보는 동호의 눈으로 시작해, 그가 기억했거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스웨덴 한림원)"을 완성했습니다.

큰따옴표 없이 쓰인 '너'의 목소리를 한참 동안 읽다 보면, 어느새 동호의 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작가의 회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진열된 한강의 작품들. (사진=이범종 기자)

 

반면 게임은 단기간에 한림원의 '파격적 시상'을 끌어내긴 어렵다는 게 김 교수의 관측입니다.

우선 게임은 책과 달리 게이머가 직접 세계 속의 사건에 개입해야 합니다.

장르와 플랫폼별로 상호작용 방식도 다양해, 책과 음악보다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게임에서 문학적 가치를 찾으려는 전 세계 문단과 한림원의 움직임은 더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도 "여러 유형의 경쟁작을 경험하고 이들에게 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경험을 명료화하는 건 시간상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흥행 보증 IP(지식재산) 확보가 우선인 게임산업에서 문학적 실험을 지탱해 줄 자본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학적으로 하나의 기류를 만들고, 이런 흐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게임 '산업'이 이를 뒷받침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나 '저니' 같은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게임들이 꾸준히 출시되면서, 사회에 영향을 주는 작품이 수십 년간 대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아야만 노벨상 수상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가정부 안드로이드 '카라'가 주인에게 학대당하던 소녀를 구하고 도망친 뒤 끌어안고 있다(사진 위). 사진 아래는 카라가 안드로이드의 상징인 동그란 LED를 제거하는 모습. (이미지='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실행 화면)

 

거대 자본 없이도 '실험' 가능해질 것

 

다만 김 교수는 게임 내 문학적 실험은 앞으로 거대 자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발전된 AI 기술이 있다면 개인이나 소모임 단위로도 고품질 게임을 만들어 10~20년 뒤 노벨상 수상자로 거론될 수 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앞으로 AI가 텍스트에 담긴 함의를 실험적으로 표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그렇게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탄생해 사회에 영향을 준다면 게임도 노벨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렇게 되면 매체의 발전 순서를 뒤집어, 게임이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영화 등을 제치고 노벨상 수상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게임 제작자는 외려 문학상보다 '평화상' 대상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소장은 "어떤 게임을 한 게이머들의 인상적인 실천들이 그 게임을 부각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 할 가능성이 있다"며 "게임 내 예술성뿐 아니라 게임의 가장 큰 속성인 게이머의 적극적 개입이 게임 밖으로 흘러갈 수 있는 서사나 구조가 있다면 노벨 평화상에 가까울 수 있겠다"고 전망했습니다.

 

게임 제작자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없다는 회의론도 여전합니다.

정정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게임법·정책연구센터장은 "부문이 정해진 만큼 게임 자체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게임의 개발 관련 기술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면, 그 기술이 각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는 경우는 상상할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newstomato.com |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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