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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정치 (외교 미스터리)④미군정 57호 피해자 외침…"국가가 나서달라"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광복 직후인 1946년, 일본에서 귀국한 조선인들은 고국에서 '미군정 57호'를 맞닥뜨렸습니다.

'일본 돈은 모두 지정은행에 예입해야 한다'는 강제 법령이었습니다.

사업·노동을 통해 '일본 돈' 중심의 사유 재산을 형성한 이들에겐 '전 재산 몰수'나 다름없는 명령이었습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군정 재산을 이양받았지만, 배상은 일절 없었습니다.

오히려 27년이 지난 1975년에야 엉뚱하게 '대일청구권 보상법'에 끼워 맞춰 보상하려 했습니다.

국가가 '배상 의무'를 인지했다는 방증이지만, 보상 주체는 미국도 한국도 아닌 일본이었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나서 '배상의 길'을 직접 막은 셈입니다.

 

 

윤기영 미군정 57호 피해자협회 부회장이 보관 중인 예치증. (사진=윤기영 부회장)

 

진화위 "취급 대상 아냐"…정부·국회·은행도 '나 몰라라'

 

피해자들은 스스로 싸워야 했습니다.

수소문으로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찾아, 지난 2005년 '미군정 57호 피해자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미국 측에 진정서를 보냈고, 정부 부처와 은행에 민원을 제기했고, 헌법소원 심판까지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한결같았습니다.

"대일청구권 보상을 통해 이미 보상이 이뤄졌고, 워낙 오래전 일인 탓에 자료도 없다"는 겁니다.

 

 

'권위주의 통치 시에 일어났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 규명을 주요 업무로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도 진실규명신청에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차 이의신청을 했지만, 답은 같았습니다.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반면 학계에선 "재산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의식주를 위해 필요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권리"라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난데없는 '대일청구권'에…보상금 '0원'

 

'미군정 57호 피해자협회' 윤기영 부회장을 지난 16일 만났습니다.

윤씨가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무려 10만엔입니다.

그중 돌려받은 금액은 '0원'입니다.

현재 화폐가치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1945년경 일본 동경 근교의 땅값이 1평당 1엔 정도였다는 증언이 존재합니다.

 

윤씨의 조부는 1945년 해방 직전,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모았던 재산을 조모에게 양도했습니다.

조모가 먼저 귀국하면 일본 사업체를 정리한 후 따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모는 미군정 57호에 따라, 자신의 이름과 남편의 명의로 1개씩 총 2개의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윤씨는 "대부분의 재산(10만엔)을 예입한 통장은 할아버지 명의인데, 할머니가 큰돈을 예치할 때 자기보단 할아버지 이름으로 일치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정부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예치금을 배상할 때, 예외조항으로 "1947년 8월15일부터 1965년 6월22일까지 일본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한다"고 규정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일동포를 신고대상에서 제외한 겁니다.

 

 

사실상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하는 돈을 전혀 관계없는 대일청구권과 연계시키면서, 윤씨 가족은 10만엔 중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겁니다.

윤씨는 인터뷰 도중 "할머니가 그렇게 큰돈을 예치하고 생계를 위해 식모 생활을 하며 살았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보상법조차 없었다…국회 역할은 어디에"

 

윤씨는 "정부가 75년에 보상법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엉뚱한 법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한다면 보상법조차 없었던 것"이라며 "국가 권력에 의해서 차단된 것에 대해, 소멸시효 지났으니까 못 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씨는 과거 공무원 신분이었던 자신의 부모님으로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부연했습니다.

당시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건, 생계를 내놓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3대째 '현재진행중'인 이 피해가 '입법 부작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입법부작위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입법자에게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입법을 하지 않은 경우를 뜻합니다.

 

 

윤씨는 "개인적으로 변호사도 찾아봤는데, 변호사마다 극구 마다했다.

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헌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재산권)을 보장했고, 그 보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법률에 위임했는데 국회에선 법조차 만들지 않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그간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말에 "반응이 없는 것"을 꼽았습니다.

이어 "배상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다면 '이런 문제가 있다' 솔직히 털어놓고, 그런 식의 협의라도 진행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당한 보상을 원하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설사 쥐꼬리만큼 받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생각"이라며 "이 사건을 밝히고, 정부·국회에 의해서 어떤 움직임과 진척이 이뤄지길 바란다.

기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정부 사과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특별법 등 국회 차원의 적극적 입법 행위가 없으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방법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입니다.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192명에 이르는 범야권 의원들이 선제적으로 입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newstomato.com |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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