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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정치 "미·중 양자택일 아냐"…이 당연한 말 나오는데 2년 반 걸렸다


3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한중 정상회담 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미·중 관계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하며 그 과정에서 한국은 미·중 양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개된 브라질 일간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목할 만합니다.

 

깜짝 놀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외교 전략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묻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우리는 국익을 중시하는 외교인데 하나는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투명성이 강하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 파트너를 찾다 보니 우연히 그러한 나라들이 자유 가치와 민주주의 경향을 띠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파트너 찾다 보니 우연히 민주주의 경향"…황당한 대통령실 설명

 

실소를 참을 수 없습니다.

'우연히'라니요? 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전략경쟁으로 끙끙 앓고 있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선택한 게 미국, 그리고 일본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의 전략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도, 한국 미국과 동맹을 맺은 지가 70년이 넘었는데 미국 섭섭하게,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요?

 

그간 윤석열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인권을 기준으로 내세운 가치·이념외교로 일관해 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그리고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이 됩니다"라는 취임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면서 '전략적 명료성'으로 간 겁니다.

 

윤석열정부, 가치·이념외교 일관…'한·중·일'표기도 대통령실 "'한·일·중'으로 해달라"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 무대도 중국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러시아를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공개적으로 '탈중국' 발언을 했습니다.

그 뒤 관례로 자리 잡은 '한·중·일' 표기 순서도 대통령실은 '한일중'으로 통일해달라고 했습니다.

 

미·일 편승외교에 올인한 끝에 2023년 8월에는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졌다"(뉴욕타임스)는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선언이 나왔습니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미싱 링크'인 한국과 일본이 '위기 시 신속 협의'를 공약했습니다.

그 대상은 물론 중국과 북한입니다.

내용으로만 보면 '한·미·일 군사동맹'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급기야 중국은 한국을 '협력보다는 위기관리 대상'으로 상정했습니다.

 

이렇게 한쪽 방향으로만 줄달음쳐 온 지 2년 반이 지나서야, 한국에 미국과 중국은 선택 대상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 겁니다.

 

전조는 이미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에 서울 한·중·일 3국 정상회의(26~27일)를 계기로 방한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하면서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하자 뒤늦게 우리 정부가 확인하는 형태이기는 했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핵심 이익 중 핵심'으로 간주하는 사안을 직접 확인한 겁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미국과 중국은 양자택일 대상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은 "미국 신행정부 출범으로 심화 가능성이 점쳐지는 미·중 간 전략 경쟁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때문이라는 겁니다.

 

'불가측성'과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트럼프 2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간 확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대중국 관계 관리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갈수록 밀착이 심화되는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도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중국도 이해가 일치합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용 덕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뜩이나 지지도가 바닥인 상태에서 편향외교에 대한 극심한 비판도 일부 감안했을 겁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에는 현재 국제 갈등 관계를 이해관계 차원이 아니라 '문명 대 비문명'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트럼프 쪽에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 윤석열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국내 보수진영에서 바로 반발이 나왔습니다.

<문화일보>는 사설로 “한·중 관계 개선 차원의 덕담이라고 해도 오해 소지가 크다"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한 인사치레로도 비친다"고 비판합니다.

"'미·중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란다"고 견제도 했습니다.

<중앙일보>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면서도 "다만 예측 가능성이 낮은 트럼프 2기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특정 방향으로 과속하지 말고 적절한 속도 조절은 필요할 것"이라고 지그시 눌렀습니다.

 

진짜 기조 변화라면?…시진핑 방한보다 먼저 방중?

 

진짜 기조를 바꾸는 것이라면, 그 여부는 내년 11월 이전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내년 11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2014년 이후 11년 만입니다.

그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방한했으니 순서상으로도 시 주석이 오는 것이 의전에 맞고, 우리 국민 정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먼저 방중하고 그에 이어 내년 11월에 시 주석이 온다면, 그때는 윤석열정부의 외교 기조 변화라는 것이 분명해질 겁니다.

지난 15일 페루 리마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방한을 제안한 동시에 시 주석도 윤 대통령을 초청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newstomato.com |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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