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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경제 (토마토칼럼)삼성전자 '애나가? 애나다!'


최근 지역 언론인들과 저녁 식사자리에서 "애나가? 애나다!"라는 건배사를 들었습니다.

경남에선 "진짜가? 진짜다!"라는 의미로 통용된다고 합니다.

 

이색적인 건배사의 어원을 알고 나니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애'는 창자를 뜻하는 옛말로, '애를 끓는다'는 표현은 익히 알고 있다시피 '몹시 고통스럽고, 슬프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애'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남긴 시에서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표현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러니 '애나가'는 '창자가 빠져나올 정도로 죽을힘을 다할 건가'라는 비장한 질문인 셈입니다.

 

최근 국내 1위 굴지의 기업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론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안팎에선 "이전보다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며 조직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간 내부적으로 여러 위기가 감지됐지만, 반도체 사업이 주력인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실기를 계기로 조직 내 곪은 상처가 고스란히 표출됐습니다.

실기의 원인을 파헤치다보면 기술 전문가들인 엔지니어들이 HBM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재무와 회계를 담당하는 수뇌부들의 벽에 가로막혀 10년 후인 현재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비판 요지입니다.

기업의 중장기적 경쟁력을 다지는 대신 단기적 성과와 재무 실적에만 치우친 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단 겁니다.

 

다만 삼성전자라는 거대 조직의 이같은 중대 실수를 수뇌부 한두 명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몸으로 체감하는 실무진의 현장 감각과 '직을 내놓을 각오'로 직언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요소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경영진의 노련함과 전문성이 상호 어우러져야 함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삼성을 대표하는 '도전과 혁신',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로 대표되는 선대의 경영 정신이 흐릿해졌단 점은 피해갈 수 없는 비판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전의 치열했던 승부근성과 집요함은 찾기 어려워지고 '삼무원(삼성전자+공무원)'으로 불리는 보신주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서 간 소통 부재도 삼성을 대변하는 낯설지 않은 표현이 됐습니다.

부서 성과에만 집착하다보니 사내 정치가 파고들고, 다른 부서와의 협업은 고사하고 같은 조직끼리도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현재 삼성이 직면한 위기는 인재의 부재, 조직 내 거버넌스 오작동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까지 못했으니 예견된 참사이기도 합니다.

 

필요하다면 휴대폰 15만대를 쌓아놓고 불태운 전례처럼 '완벽한 품질 경쟁력'을 향한 결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조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개개인의 '프로 정신'을 다잡는 일은 언론에서 '뉴삼성'의 일환으로 제기하는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나 컨트롤타워 부활 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를 거느리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자사의 AI 행사에서 "삼성은 SK보다 훨씬 많은 기술과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HBM 선전으로 반도체 업계 1·2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상대 회사에 대한 예의를 갖춘 의례적 멘트로도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 삼성은 초격차 기술력과 특유의 도전 정신으로 1위를 지켜왔습니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도 종종 사석에서 "삼성은 저력이 있는 기업"이라며 경외심을 감추지 않을 정도입니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당선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에게 미래는 더욱 위기일 수 있습니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한종희 부회장은 55주년 창립기념식에서 "변화 없이는 아무런 혁신도, 성장도 만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과거 성과에 안주해 승부근성과 절실함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미래보다는 현실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겠다"고도 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산업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도전을 계속해야 합니다.

수성이 아닌 승부근성의 DNA를 깨워야 합니다.

 

 

'애나가?', 이 질문에 삼성전자는 답할 준비가 돼있습니까. 

 

임유진 재계팀장 limyang83@etomato.com

newstomato.com | 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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