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15일 부산 지스타 현장에서 해본 펄어비스(263750) '붉은사막' 시연판은, 패키지 게임에 대한 이상을 간직한 개발자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게임이었습니다.
펄어비스는 유행따라 만드는 붕어빵식 모바일 게임 대신, 게이머들의 오랜 꿈을 반영한 패키지 게임을 회사의 미래로 선택했습니다.
국내 상장사에서 보기 힘든 이 도전의 중간 결과를 접해보니, 실로 오랜만에 한국 게임에서 '낭만'이란 단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스타 시연판은 회색갈기 용병단 클리프와 동료들이 정신없이 싸우다 패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완성하는 건 게이머의 몫인데요. 쉴 새 없이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적들을 상대로 레슬링 기술과 밀치기 등 다양한 공격을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클리프의 최후를 보게 됩니다.
그가 어떻게 되살아나 광활한 파이웰 대륙을 누비게 될지는 2025년 출시될 제품판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일 부산 벡스코 '지스타 2024' 행사장에 마련된 펄어비스 부스에서 '붉은사막'을 체험하려는 게이머들이 줄 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도입부가 끝난 뒤, 게이머는 보스 네 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대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난도가 가장 낮은 '사슴왕'에게 도전했는데요. 그는 폐 성터의 왕좌에 앉아 있는 망국의 왕으로, 왕국 재건을 위한 국고를 노리는 자들을 심판해 왔습니다.
사슴왕은 클리프의 공격을 방패로 쳐내고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는 등 다양한 공격으로 목을 조여옵니다.
클리프 역시 만만치 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급 차이 때문에 레슬링 기술을 쓸 수는 없지만, 회피·구르기로 거리를 벌려 불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붉은사막' 보스 중 한 명인 '사슴왕'. (이미지=펄어비스)
사슴왕이 달려드는 순간에 맞춰 밀쳐내기를 하고, 상대가 숨을 고를 때 강공격을 날려 체력을 깎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쉽지 않습니다.
체력 회복을 반복하며 적당히 피하고 강공격을 날리면 세 번에 걸친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지만, 저는 그러지 않고 당당히 맞서다 죽기를 택했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공격 패턴을 외우고 한대 씩 반격해 이기는 것보다는 다양한 공격을 조합해 한 편의 액션 영화같은 전투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 더 큰 재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붉은사막 제작진은 이를 위해 전투 화면을 하나의 시점으로 고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카메라 시점을 바꾸는 데 공들였습니다.
여기에 펄어비스가 만든 '블랙스페이스 엔진'이 사실적인 그래픽을 보태 몰입감을 더합니다.
게이머들이 '붉은사막' 시연판 도입부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만일 이 게임을 소울류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다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겁니다.
붉은사막은 보스 움직임의 박자를 외워 패링과 회피, 강공격만 반복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작진이 지향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붉은사막은 소울류와 다른 의미로 어렵습니다.
외워야 할 전투 버튼과 조합이 많기 때문입니다.
15분짜리 튜토리얼 영상과 30분에 걸친 체험에선 이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원하는 전투는 '설계도 없는 레고'에 가깝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맘대로 쌓고 깨기를 반복하며 나만의 액션 영화를 만들어가는 재미. 이건 게이머와 제작진 누구나 꿈꿔봤을 이상적인 한국 게임 중 한 편의 모습일 겁니다.
펄어비스는 그 낭만을 정체성으로 택했습니다.
붉은사막의 콘텐츠는 전투뿐이 아닙니다.
펄어비스는 채광·채집·낚시·제작은 물론, 등반·말·글라이드(까마귀 날개)로 파이웰을 탐험하는 재미도 줄 예정입니다.
'붉은사막' 시연 종료 화면. 화면 속 괴물은 '여왕 돌멘게'. (사진=이범종 기자)
다만 제작진이 돌아볼 지점도 있었습니다.
한국 게임임에도 초반부터 우리말 맞춤법 확인에 소홀했다는 점입니다.
도입부에서 상대편 우두머리의 대사 자막 중 '뒤지다'가 나오는데, 이는 '뒈지다'의 잘못입니다.
국산 게임에서 흔히 '뒤지다·뒈지다'와 '든가·던가' 표현이 옳게 쓰이지 않고 있는데요. 붉은사막은 국산 대작 게임인 만큼 어휘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나 패키지 게임은 한 번 발매한 디스크 내용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에 실릴 글 역시 책을 준비하듯 검토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펄어비스가 준비한 선물은 크리스마스를 지나 내년에 도착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newstomato.com | 이범종 기자
펄어비스는 유행따라 만드는 붕어빵식 모바일 게임 대신, 게이머들의 오랜 꿈을 반영한 패키지 게임을 회사의 미래로 선택했습니다.
국내 상장사에서 보기 힘든 이 도전의 중간 결과를 접해보니, 실로 오랜만에 한국 게임에서 '낭만'이란 단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스타 시연판은 회색갈기 용병단 클리프와 동료들이 정신없이 싸우다 패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완성하는 건 게이머의 몫인데요. 쉴 새 없이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적들을 상대로 레슬링 기술과 밀치기 등 다양한 공격을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클리프의 최후를 보게 됩니다.
그가 어떻게 되살아나 광활한 파이웰 대륙을 누비게 될지는 2025년 출시될 제품판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일 부산 벡스코 '지스타 2024' 행사장에 마련된 펄어비스 부스에서 '붉은사막'을 체험하려는 게이머들이 줄 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도입부가 끝난 뒤, 게이머는 보스 네 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대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난도가 가장 낮은 '사슴왕'에게 도전했는데요. 그는 폐 성터의 왕좌에 앉아 있는 망국의 왕으로, 왕국 재건을 위한 국고를 노리는 자들을 심판해 왔습니다.
사슴왕은 클리프의 공격을 방패로 쳐내고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는 등 다양한 공격으로 목을 조여옵니다.
클리프 역시 만만치 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급 차이 때문에 레슬링 기술을 쓸 수는 없지만, 회피·구르기로 거리를 벌려 불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붉은사막' 보스 중 한 명인 '사슴왕'. (이미지=펄어비스)
사슴왕이 달려드는 순간에 맞춰 밀쳐내기를 하고, 상대가 숨을 고를 때 강공격을 날려 체력을 깎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쉽지 않습니다.
체력 회복을 반복하며 적당히 피하고 강공격을 날리면 세 번에 걸친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지만, 저는 그러지 않고 당당히 맞서다 죽기를 택했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공격 패턴을 외우고 한대 씩 반격해 이기는 것보다는 다양한 공격을 조합해 한 편의 액션 영화같은 전투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 더 큰 재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붉은사막 제작진은 이를 위해 전투 화면을 하나의 시점으로 고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카메라 시점을 바꾸는 데 공들였습니다.
여기에 펄어비스가 만든 '블랙스페이스 엔진'이 사실적인 그래픽을 보태 몰입감을 더합니다.
게이머들이 '붉은사막' 시연판 도입부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만일 이 게임을 소울류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다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겁니다.
붉은사막은 보스 움직임의 박자를 외워 패링과 회피, 강공격만 반복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작진이 지향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붉은사막은 소울류와 다른 의미로 어렵습니다.
외워야 할 전투 버튼과 조합이 많기 때문입니다.
15분짜리 튜토리얼 영상과 30분에 걸친 체험에선 이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원하는 전투는 '설계도 없는 레고'에 가깝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맘대로 쌓고 깨기를 반복하며 나만의 액션 영화를 만들어가는 재미. 이건 게이머와 제작진 누구나 꿈꿔봤을 이상적인 한국 게임 중 한 편의 모습일 겁니다.
펄어비스는 그 낭만을 정체성으로 택했습니다.
붉은사막의 콘텐츠는 전투뿐이 아닙니다.
펄어비스는 채광·채집·낚시·제작은 물론, 등반·말·글라이드(까마귀 날개)로 파이웰을 탐험하는 재미도 줄 예정입니다.
'붉은사막' 시연 종료 화면. 화면 속 괴물은 '여왕 돌멘게'. (사진=이범종 기자)
다만 제작진이 돌아볼 지점도 있었습니다.
한국 게임임에도 초반부터 우리말 맞춤법 확인에 소홀했다는 점입니다.
도입부에서 상대편 우두머리의 대사 자막 중 '뒤지다'가 나오는데, 이는 '뒈지다'의 잘못입니다.
국산 게임에서 흔히 '뒤지다·뒈지다'와 '든가·던가' 표현이 옳게 쓰이지 않고 있는데요. 붉은사막은 국산 대작 게임인 만큼 어휘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나 패키지 게임은 한 번 발매한 디스크 내용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에 실릴 글 역시 책을 준비하듯 검토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펄어비스가 준비한 선물은 크리스마스를 지나 내년에 도착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