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최말자(78)씨의 ‘56년 만의 미투’에 대법원이 응답했습니다.
최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생면부지 남성이 최씨를 성폭행하려고 하자 그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은 최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중상해죄로 처벌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겁니다.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 미투 열풍이 불자 최씨도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하고 나섰습니다.
하급심에선 모두 기각됐습니다.
최씨는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씨의 재심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습니다.
대법원 판결 후 최씨는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습니다.
누구보다 푸르러야 했을 18살 최씨의 봄은 그렇게 악몽이 됐지만, 50년이 지나서야 억울함을 풀고 다시 봄을 꿈꿀 길이 열린 겁니다.
20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재심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결정을 환영하며 기자회견을 연 최말자씨. (사진=한국여성의전화)
6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최씨 사건은 검찰과 법원의 대표적 흑역사 중 하나입니다.
형법학 교과서에 성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하지 않은 잘못된 판례로 최씨 사건이 실렸을 정도입니다.
당시 최씨는 느닷없이 자신을 쓰러뜨리고 입을 맞추려는 노모씨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혀를 깨물었습니다.
노씨는 혀가 1.5㎝ 잘렸습니다.
경찰은 노씨에게 강간미수·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습니다.
최씨에게 ‘남자의 인생을 망쳤다’면서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했습니다.
검찰은 그를 6개월가량 구금하다 중상해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반면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를 제외한 채 기소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외면한 건 법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노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린 겁니다.
전과자의 굴레를 쓰고 한 많은 세월을 견디던 최씨가 재심을 결심한 건 미투 열풍이 뜨겁던 2018년입니다.
최씨는 뒤늦게 학교에 진학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며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지원과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씨는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6년 만이었습니다.
물론 재심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1·2심 모두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최씨의 진술 외 검찰의 불법 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형사소송법상 재심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판사·검사·경찰이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청구할 수 있습니다.
통상 재심청구인은 과거 수사·재판기록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최씨는 이러한 기록이 없어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재심을 청구하는 사람의 진술 외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재심청구를 기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불법 구금에 관한 최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의 증거들이 제시된 반면, 그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원심으로서는 최씨의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씨와 그를 도왔던 한국여성의전화·변호인단 등은 이날 서울시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판단에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최씨는 “모든 것은 여러분 덕”이라며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었다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전했습니다.
이어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자가 없게끔 부탁드리고 싶다”며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정당방위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과거 검찰만 아니라 법원도 미성년자인 최씨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등 인권침해적 재판을 진행했다.
대법원이 이를 재심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건 아쉽다”면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뒤집힌 정의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최말자 선생님과 미투 운동에 함께했던 여성들의 용기로 오늘 정의의 문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며 “재심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newstomato.com | 강석영 기자
최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생면부지 남성이 최씨를 성폭행하려고 하자 그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은 최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중상해죄로 처벌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겁니다.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 미투 열풍이 불자 최씨도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하고 나섰습니다.
하급심에선 모두 기각됐습니다.
최씨는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씨의 재심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습니다.
대법원 판결 후 최씨는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습니다.
누구보다 푸르러야 했을 18살 최씨의 봄은 그렇게 악몽이 됐지만, 50년이 지나서야 억울함을 풀고 다시 봄을 꿈꿀 길이 열린 겁니다.
20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재심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결정을 환영하며 기자회견을 연 최말자씨. (사진=한국여성의전화)
6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최씨 사건은 검찰과 법원의 대표적 흑역사 중 하나입니다.
형법학 교과서에 성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인정하지 않은 잘못된 판례로 최씨 사건이 실렸을 정도입니다.
당시 최씨는 느닷없이 자신을 쓰러뜨리고 입을 맞추려는 노모씨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혀를 깨물었습니다.
노씨는 혀가 1.5㎝ 잘렸습니다.
경찰은 노씨에게 강간미수·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습니다.
최씨에게 ‘남자의 인생을 망쳤다’면서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했습니다.
검찰은 그를 6개월가량 구금하다 중상해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반면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를 제외한 채 기소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외면한 건 법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노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린 겁니다.
전과자의 굴레를 쓰고 한 많은 세월을 견디던 최씨가 재심을 결심한 건 미투 열풍이 뜨겁던 2018년입니다.
최씨는 뒤늦게 학교에 진학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며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지원과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씨는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6년 만이었습니다.
물론 재심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1·2심 모두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최씨의 진술 외 검찰의 불법 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형사소송법상 재심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판사·검사·경찰이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청구할 수 있습니다.
통상 재심청구인은 과거 수사·재판기록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최씨는 이러한 기록이 없어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재심을 청구하는 사람의 진술 외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재심청구를 기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불법 구금에 관한 최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의 증거들이 제시된 반면, 그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원심으로서는 최씨의 진술의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씨와 그를 도왔던 한국여성의전화·변호인단 등은 이날 서울시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판단에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최씨는 “모든 것은 여러분 덕”이라며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었다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전했습니다.
이어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자가 없게끔 부탁드리고 싶다”며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정당방위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과거 검찰만 아니라 법원도 미성년자인 최씨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등 인권침해적 재판을 진행했다.
대법원이 이를 재심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건 아쉽다”면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뒤집힌 정의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최말자 선생님과 미투 운동에 함께했던 여성들의 용기로 오늘 정의의 문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며 “재심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