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김한결 기자] 한국산업은행이 자본 건전성의 핵심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개선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의 현물출자와 예산 지원으로 산은의 자본은 약 2조3900억원 증가하며 BIS 비율이 일부 개선됐지만, 오는 4월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산은이 보유한 HMM(011200)의 영구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HMM 주식이 늘어나면 주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최대주주인 산은의 BIS 자기자본비율도 덩달아 하락할 우려가 큽니다.
산은 BIS 비율 14% 개선…정부 출자에 기대
(그래픽=뉴스토마토)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산은의 BIS 총 자본 비율은 14.34%(잠정)입니다.
금융당국이 은행 건전성을 위해 권고하는 기준치(13%)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2023년 3월 13.11%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1.23%포인트(p)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17개 국내은행(8개 은행 지주·9개 비 지주 은행) BIS 총 자본 비율 평균인 15.85%보다 1.51%포인트(p) 낮습니다.
순위로 따지면 16위에 머무릅니다.
산업은행과 같이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15.76%), 기업은행(024110)(14.88%)보다도 뒤처집니다.
2023년 산업은행의 BIS 비율은 하락세를 거듭했습니다.
2분기에는 후순위 채권 8000억원 규모 발행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042660)) 매각에 이은 충당금 1조2000억원 환입 덕분에 BIS 비율 14.11%까지 '반짝' 높아졌는데요. 3분기부터 13.75%로 급락해 4분기 13.70%까지 낮아진 상황이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산업은행의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를 대상으로 산업은행 자본 건전성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지난달 1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한국산업은행 '2023 회계연도 결산 시정요구사항'을 보면 "한국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특수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산업은행은 은행의 자본 건전성 및 수익성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산은이 자본 건전성 강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대책은 수익 증가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까지 산은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하락했습니다.
산은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조8010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요. 전년 3분기 누적 2조9235억원 대비 38.4% 감소했습니다.
순이자손익 급감이 당기순익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산은의 3분기 누적 순이자손익은 8082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2303억원) 대비 34.3% 줄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자수익은 9조156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3% 증가한 반면 이자비용이 8조3486억원으로 15.6% 늘어 이자비용이 이자수익보다 증가폭이 커지며 순이자손익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회사채 위주 조달 구조의 영향으로 조달비용이 높아 순이자마진이 낮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화오션 기저효과도 수익성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2023년 한화오션이 한화그룹으로 인수되면서 신용등급은 CCC에서 BB-로 상승했는데요. 신용등급 상승으로 산은이 적용하는 위험가중치가 낮아지며 1조원 가량의 대손충당금 환입이 인식됐습니다.
또한 인수 당시 주가 상승에 따른 투자지분 손상차손 환입 약 4000억원이 발생해 산은은 2023년 2조508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엔 한화오션 기저효과가 사라지며 순익이 감소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금융업계에선 산은이 자체적인 수익성 강화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하느라 수익성이 낮아진 측면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은 국가에 상당히 큰 금액을 배당하면서 국가 재정에 기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기여하기 위해서 좀 더 수익성을 낼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수익성이 하락하며 산은은 자본 건전성 개선에 있어 자체적인 제고 노력보다 정부 지원에 기댔습니다.
산은은 지난 3월 기획재정부로부터 현물출자 방식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2조원을 유상증자 받았습니다.
또한 정부가 산은의 혁신성장펀드, 지역활성화투자펀드, KDB탄소넷제로 프로그램 등을 위해 편성한 3900억원의 예산도 4월, 6월, 7월 신주 발행을 통해 산은에 투입됐습니다.
그 결과 산은의 BIS 비율은 지난해 1분기 14.28%로 올라섰습니다.
그 뒤에도 2분기 14.25%, 3분기 14.34% 등 14%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4월 HMM CB 주식 전환 '골머리'
지난해 일정 수준 자본 건전성이 개선됐지만 올해 추가로 관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산은이 보유하고 있는 HMM 영구 CB 전환이 예정됐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4월, HMM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2대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CB를 주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추가로 산업은행이 받게 되는 HMM 주식 규모는 7200만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의 전환권 행사 중 가장 많은 규모입니다.
HMM 주가가 액면가 5000원을 밑돌지 않는 한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을 시 경영진 배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일 종가 기준 HMM 주가는 1만7700원입니다.
CB 전환으로 HMM 주식 1억4400만주가 늘어나 주가도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통상 주식 수요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공급이 증가하면 주가는 떨어집니다.
산은은 현재 HMM 지분 33.73%를 보유 중인데요. HMM CB 주식 전환으로 지분이 늘어난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한다면 산은 BIS 비율에 타격을 줍니다.
지난해 6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HMM 주가가 1000원 움직이면 산은의 BIS 비율은 0.07%p 움직인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도 같은 의견을 표했습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HMM CB가 주식 전환되면 BIS 비율을 엄청 깎아먹을 것"이라며 "HMM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걱정된다"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선 올해 산은의 자금 투입 빈도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정부가 자본 확충 지원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은행 자본 확충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정부가 자본금을 직접적으로 늘려주는 것"이라며 "올해 산업은행이 자금을 투입할 곳이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부터 자본금을 늘리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또한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자는 "정부 출자로 자기 자본 확충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그 대신 산업 목표 등을 재정립하고 국민주 방식의 매각 방식을 검토하는 등 산업은행 역할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산업은행 본점 전경. (사진=산업은행)
임지윤·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