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박주용·차철우 기자] 미군정 57호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미군정 57호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잊혀진 역사인 만큼 '과거사 진상조사 기구'가 꾸려져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랐는데요. 다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는데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시급한 현안이 아닌 탓에 여야 국회의원조차 미군정 57호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한몫했습니다.
제22대 국회 임기 시작일인 지난 5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개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억울함 없도록 진실 밝혀야"
<뉴스토마토>가 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미군정 57호'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 조사가 필요한가'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은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설문에는 행안위 소속 여야 의원 21명 중 10명이 답했습니다.
이 중 6명이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는데요. 이상식·김성회 민주당 의원, 조은희·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등 4명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응답은 피했습니다.
행안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윤 의원은 "진상을 제대로 규명한 다음에 배·보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 조사 기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같은 당의 채현일 의원도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감춰졌다"며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당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모경종 민주당 의원 역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피해 보상을 위한 과거사 조사기구 구성이 필요하다"고 동의했고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가의 합법적 권력 행사라 할지라도 국민의 재산상 손실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기본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기본 원리"라며 "누가 얼마의 피해를 입었는지를 판단하려면 진상조사기구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 방법에는 '침묵'…조사 주체도 입장 분분
다만 진상 규명 방식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모호한 답변만 내놨습니다.
진실 규명이 선행돼야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도 논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진실을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입니다.
채 의원은 "무엇보다 정부가 미군정 57호 조치와 관련해 명확한 설명과 피해 범위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지만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내용은 여러모로 다 검토해봤다"는 김성회 의원도 "법도 이미 다 만료가 됐고, 지금 단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어 보인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과거사 조사 기구를 꾸리더라도 그 주체가 누가 돼야 하는지에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과거사 조사 단체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행정안전부 산하로 배치돼 있어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했으나, 금융 관련 사안들도 있기 때문에 정무위원회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박정현 의원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여부를 보려면 위원회 설립 근거 법률인 '과거사정리법'의 목적과 진실규명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며 "해당 사건이 발생한 미군정청이 공권력에 대한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인지 또는 이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인권침해에 해당하는지도 과거사위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짚었는데요.
이어 그는 "과거사위를 포함한 정부의 어느 기능에서 해당 조사를 수행할 수 있을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은행 예금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금융을 소관으로 하는 정무위원회에서 다룰 문제인지, 과거사 문제로만 바라봐 행안위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인지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진상 규명의 취지가 오인되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요.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혹여나 미군정 57호 피해자 구제가 친일파 재산 찾기로 비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사업 혹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다 해방 후 귀국한 사람들이고, 소지하고 있던 자산을 조선돈으로 바꾸기 전 강제 예치한 사람들이지만 이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탓에 진상 규명도 전에 오해부터 받는 꼴입니다.
김진양·박주용·차철우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