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한밤 중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사태' 여파에 재계는 긴장을 이어가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트럼프 2기 집권을 앞두고 글로벌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돌발 상황을 만들자, 재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전날 밤부터 긴박하게 전개된 비상계엄 선포 상황을 살피며 향후 벌어질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환율이 급등하고 뉴욕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이는 등 금융 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 역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이날 오전부터 긴급회의를 소집,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영향을 점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습니다.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배치됐던 경찰버스가 철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긴급 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회는 4일 새벽 본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사진=연합뉴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었습니다.
경영진은 이 자리에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파악과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향후 그룹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습니다.
LG는 이날 오전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금융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해외 고객 문의에 대한 대응 등을 논의했습니다.
국회의사당과 인접한 서울 여의도에 사옥이 위치한 LG는 이날 새벽 직원들에게 "비상계엄 관련 여의도 상황이 좋지 않아 트윈(사옥) 동관, 서관 모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는 공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등은 비상계엄 상황이 종료됐단 점에서 긴급 대책 마련보다는 내부적으로 특별히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점검하는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HD현대는 오전 7시30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각사별 대응 전략을 수립키로 했습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요동친 것과 관련해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HS효성도 사장단 및 관련 임원들이 모여 긴급 경제 상황 점검 회의를 열었으며, 포스코홀딩스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이 있는 부서들이 개별적으로 금융 시장 동향 등을 점검했습니다.
4대 그룹.(사진=연합뉴스)
기업들 "국가 신인도 하락…기업 브랜드 타격, 악재"
일부 기업 고위 임원들은 전날 밤 계엄령 소식을 듣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와 생중계를 지켜보며 향후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정국 불안 요소가 더욱 커졌단 점에서 향후 벌어질 상황들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등 경영 활동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계엄 사태가 또다른 악재가 될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4대 기업 관계자는 "이러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밸류업'하라고 기업들 등을 떠밀더니 이번엔 비상계엄과 같은 정치적 이슈까지 꺼내들었다.
기업 살리기 법안들은 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시장 불안도 불안이지만, 정치권이 약속한 규제 개혁이 다 올스톱이 돼버릴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며 "정치 리스크가 산업과 경제를 흔드는 상황이 돼버리니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추이를 지켜보는 중인데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주요 기업들은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기업들의 이미지와 신뢰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에 몸담은 입장으로서 정치적 얘기는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대한민국 재계와 산업계 경제 전체로 보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타격이 예상돼 우려스럽다"고 했습니다.
또 "비상계엄이 해제됐으니 당장에 기업 경영활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해외에서 투자를 소극적으로 할테니, 그런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해외에서 비상계엄이라고 하면 어떻게 바라 보겠나"라고 반문한 뒤 "그런 국가의 기업과 장기간 투자를 이어가고 싶겠나. 악재 중 악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계엄령 사태가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돼야 한다는 의견도 컸습니다.
또 다른 주요 기업 관계자는 "경제나 기업에서는 가장 꺼려하는 게 '불안정'과 '변수'"라며 "향후 탄핵 정국으로 간다면 정국이 어수선해질 것이고, 경제 악영향을 끼칠 게 자명하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어 "정국이 불안정해지면 투자 심리를 비롯해 환율, 수출, 증시 등 경제·산업 전반이 침체되고 불안해진다"며 "기업들이 경영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빨리 결정이 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제단체들 입장문 자제…추이 지켜보는 중
경제단체들도 이번 사태가 향후 경제계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경제단체들은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진 않았지만 기존 행사를 취소하는 등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대한상공회의소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상법 개정안 토론회는 취소됐습니다.
대한상의는 이날 오전 임원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상의는 당초 논평을 검토 중이었다가 엄중한 상황을 감안해 논평 발표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나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계엄 관련 공식 논평은 내지 않았습니다.
무협도 오전 긴급 경영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해제 등 일련의 사태가 한국 경제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도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정서와 같다.
빨리 정치적 안정이 이뤄져야 국민들도 살기 좋고 기업하기도 좋은 환경이 되는데, 더 이상의 혼란이 없길 바랄 뿐"이라며 "기업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역시 비상계엄 사태가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협조해야 하는 게 산업계의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저녁 서울역TV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