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는 정치인들과 유명인들, 연예인들의 수많은 사과문을 경험했습니다.
사과문 하나에 논란이 수그러 들기도 했지만 사과문이 더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명태균 게이트'의 여파로 열린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은 '무제한 끝장 회견'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더 큰 논란을 일으킨 사과문으로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수학에도 정석이 있듯 사과에도 정석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제대로 담긴다면 완벽한 사과문이 된다는 공식입니다.
그리고 회자되는 사과문 중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과문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사과문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정확한 말과 반복적 사과 △문제에 대한 정확한 언급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 △사후 개선책 제시 등입니다.
여기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언급과 사후 개선책이 가장 중요한데요.
윤 대통령의 회견에는 사과문의 공식이 단 하나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담화 도중 고개를 숙여 사과했지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처드렸다"고만 밝혔습니다.
국민 모두가 공천개입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육성을 들었지만, 윤 대통령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한 기자가 분명하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 사과'라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 사과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되레 '팩트'를 언급하며 "워낙 많은 이야기가 나와 다 살펴볼 수 없었다"고 변명했습니다.
태도 자체에도 문제가 컸습니다.
국민 앞에 나선 자리였지만 윤 대통령의 화법에서 '대통령의 품격'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술자리 잡담'이라는 비판을 스스로 자초했습니다.
시종일관 탁자를 두 손으로 짚은 채 말을 이어간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을 떠올리게 했고 기자의 질문에 '무식한 질문'이라는 투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사회를 맡은 대변인에게는 "이제 하나 정도만 하자, 목이 아프다 이제"라고 했고, 대변인이 질문을 그만 받으려 하니 "좀 더 해"라고 반말하기도 했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은 시간만 늘어졌을 뿐,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애초에 사과할 생각이 없었고, 왜 20%대 지지율이 깨졌는지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국민들이 윤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골든타임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통과가 정부·여당에 마지막 기회가 될 겁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