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민주당이 주주 보호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재계의 반대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란 정국으로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가 심화됐다는 이유를 들며 기업에 부담이 되는 상법 개정 등을 신중히 검토해달라고 거듭 읍소 중입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배임죄로 수사, 기소, 처벌받는 문제에 대해 공론화할 때가 된 것"이라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자 기업계는 이 틈을 적극 공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은 상법과 배임죄는 함께 논의할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상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우려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배임죄 폐지를 상법 개정의 반대급부로 받아내려는 재계의 '공포 마케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의 개회사에 박수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9일 민주당 주최 상법 토론회에 주주 측 대표로 참석했던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27일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상법 개정을 이유로 배임죄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조금 무리한 요구로 보인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번 상법 개정의 쟁점은 주주의 권리보호이기 때문에 대체로 민사의 영역에 속한다"며 "반면 배임죄는 범죄 대상이 일반 재산에 관련한 문제라 형사에 속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층위가 다른 문제를 타협의 카드로 내민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의도라 볼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기업 총수들이 극도로 꺼리는 것이 감옥에 가는 것인데, 재계의 '오래된 숙원'을 풀기 위해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앞서 <뉴스토마토>와 한 인터뷰에서 "(상법) 일보 전진을 핑계로 (배임죄) 10보 후퇴하는 개악"이라고 일침을 놓은 바 있습니다.
박 교수 역시 "(상법이 개정되지 않아서) 이사가 충실·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사후적·법적인 제재가 불가능해진다"는 이유로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를 동일 선상에 둘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소송 남발?…오히려 없을까 걱정"
재계의 우려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제개혁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상법 개정 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하며 배임죄 완화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상세한 설명을 보탰습니다.
김 교수는 "상법이 개정돼도 배임죄 적용대상 거래가 새롭게 늘지 않는다"면서 "소송의 대상이 제한적이고 소송 원고 모집, 소송 제기 및 입증이 어려워 소송 남발은 커녕 너무 없을까봐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상법 개정으로 새롭게 추가되는 소송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에 적용되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부당합병과 포괄적 주식교환, 자사주 맞교환, 차별적 일반공모, 극단적 주식병합 등에만 새롭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집단 소송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대리인이 일일이 원고를 모집해야 합니다.
원고가 너무 적게 모이면 청구금액이 너무 작아져 소송대리할 경제적 이유가 없어집니다.
아울러 원고 주주가 불공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소송이 현실화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이번 상법 개정은 회사가 아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조항을 두는 것이기에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상법상 특별 배임죄'의 대상이 새롭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입니다.
김 교수는 "배임죄가 문제되는 이유는 법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이를 남용하는 검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민주당 내에서도 배임죄 완화에 대해선 회의적 의견이 제기됩니다.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하나의 논리로 이용되는 것은 의아하다"며 "현재 이 대표가 배임죄 수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배임죄 폐지 혹은 완화를) 말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