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고객센터 이용약관 청소년정책 개인정보처리방침 광고안내
ⓒ2025 DreamWiz
뉴스 > 사회 '고향 선배'의 명복을 빌며
[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강태완씨의 비보를 기사로 접한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몽골 국적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인 강씨. '군포 청년'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달 8일, 전라북도 김제시 지평선산업단지에 위치한 특장차 생산업체 HR E&I에서 근무하던 도중 10t짜리 무인 건설장비와 굴착기에 끼어 숨졌습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고 외국인등록증을 얻은 지 몇 달 만입니다.

 군포에 살던 그가 김제의 회사에 취업한 이유는, 인구소멸 지역에서 5년만 일하면 지역특화형 비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보 속엔 선한 인상의 한 청년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일에 쫓겨 눈길을 오래 두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득문득 그 얼굴이 떠올라 마음에 밟혔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와 전 고향이 같았고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1학년때 3학년이었으니 어쩌면 지나가다 만났을수도 있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15일 다녀온 고 강태완씨의 빈소. (사진=뉴스토마토)

 

회사가 유족과 원만한 협의를 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에 대한 취재계획을 짜려는 찰나, 12·3 비상계엄이 터졌습니다.

정신 없는 상황에서 가끔 그를 생각했습니다.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 날. 유족과 회사의 협의가 타결돼 군포에서 장례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빈소인 원광대학교 산본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가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인의 직장동료들은 시민사회, 정계 인사들에 대해 깊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게 울분을 쏟아낸 강씨의 동료는 "시민사회단체와 정계 인사들이 태완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며 "평소에 친분도 없고 고인을 잘 모르는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고인을 자신들의 정치력을 확장하는 데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모제도 어색했습니다.

고인과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추억하고 일화를 소개하는 식이 아닌, 고인과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장, 정치인들이 마이크를 쥐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납득하기 어려웠던 직장동료들은 추모제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장례식장에는 태완씨의 학창시절 친구들도 오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하지 못한 추모제에서 강씨는 더 외로웠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사를 어떻게 써야할 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민사회단체가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에 대해 연대하는 것이 꼭 비판받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조금더 유족과 동료들을 배려하는 추모식이 이뤄질 순 없었을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완씨 사연을 통해 다른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한 처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물론 기사는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감시한 직전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모든 추모객의 멘트를 나열하는 식으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직장동료에게는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을 뽑고, 시민사회단체와 정치인에게는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변화를 만들겠다는 다짐들을 뽑은 겁니다.

 

태완씨가 살아있었다면 이 상황에 대해, 그리고 제 기사에 대해 뭐라고 생각했을지 두렵습니다.

저는 좋은 기사를 쓴 걸까요. 좋은 기자라면 이 상황에서 야마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 걸까요.

 

이 글을 남기는 것은, 적어도 이런 고민들을 놓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게으른 기사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 고인을 위해 옳은 길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겪은 딜레마를 바탕으로, 다음에는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고향 선배인 태완씨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비극을 계기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두고 처우가 변화하도록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게 저만의 애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죽은 자는 산 자를 돕고 있습니다.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newstomato.com | 차종관 기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