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체코에서 열린 국제 원자력데이에서 한수원 측이 원전 외 수소차, 배터리, 반도체 등 사업 협력 기회를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대통령의 체코 순방 땐 당초 불참하려던 4대그룹 총수들이 뒤늦게 합류했는데 원전 수주를 돕기 위한 목적과 개연성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9월12일(현지시간) 체코에서 열린 원자력데이 발표날 한수원 발표자료. 사진=김정호 의원실
11일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체코 플젠에서 열린 국제 원자력데이에서 한수원 발표 자료엔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수소, 방산, 관광, IT, 방위산업의 협력 기회를 강조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자료 표제는 ‘원전산업 협력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달았습니다.
협력 대상으로 지목된 반도체 등 산업은 삼성, LG, 현대차 등 민간이 주도하는데 한수원이 협력 기회를 내세운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다음 열린 원자력데이에서 발표된 자료”라며 “선정 후 주요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한 자료니 입찰 시엔 더 많은 자료가 (체코 정부에) 제출됐을 걸로 봐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또한 “행사가 체코 플젠에서 열렸으니 체코 정부도 당연히 인지하는 내용"이라며 "그러니 협의된 내용만 추려서 발표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수원 권한 밖이란 지적엔 “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내용을 한수원이 약속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원자력데이 당일 한수원 관계자가 발표한 영상도 있습니다.
해당 영상을 보면, 관계자는 “한국 대통령이 오면 모든 부처 장관들이 함께 올 것”이라며 “맞은 편 테이블에서 협상할 기회가 생긴다”고 언급했습니다.
장관들만 언급했지만 체코 순방 때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동행했습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2기 건설은 양국이 100년, 수천년 결혼한 것과 같다.
체코는 원전 외 분야에서 협력할 기회가 생긴다”면서 “한국은 세계 2위 배터리, 세계 1위 수소차 생산국이다.
반도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한항공은 일주일에 몇 번씩 비행기를 운행하는데 앞으로 훨씬 더 자주 운행할 것이라 믿는다”고도 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방위산업까지 언급하면서 “원자력 분야 협력 외에 다른 분야에서 협력할 기회로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프라하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서 경제사절단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에 동행한 기업 대표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선 체코 순방 때 두산, SK, 포스코 총수만 참석키로 정했다가 뒤늦게 4대그룹 총수 모두 합류한 사실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앞서 정부와 총수 일정을 조율했던 그룹 고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두산은 원전 사업이 걸려 있었고 SK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고 포스코는 그동안 패싱당하다가 모처럼 불려 참여동기가 있었다”며 “그 외 총수들은 사업 연관성도 떨어지고 다른 일정도 잡혀 있어 참여하지 않기로 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4대그룹 총수들의 체코 순방 활동이 부진하자 부산 행사에 이어 다시 ‘병풍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한수원이 발표한 반도체 등 협력 기회는 사실상 이들 민간이 주도해온 영역이라, 그 맥락에서 보면 4대그룹 총수들의 참석 유인도 있었던 셈입니다.
체코는 유럽의 탄소중립 목표에 맞춰 태양광, 원전 등 에너지기후대책과 클린 모빌리티 국가 계획 등을 추진 중입니다.
이를 위해 전기차 및 수소차 분야 투자 유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벌어졌을 당시 유럽의 관문인 체코는 특히 타격이 컸습니다.
이에 반도체 투자 유치에도 목메는 상황입니다.
역내 반도체 투자를 유치하고자 투자 보조금도 확대했습니다.
이런 원전 외 사업 협력 가능성을 두고 원전 입찰 과정에서 협상이 오갔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원전 외 사업 협력 동기를 자극하면 원전 수주 협상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며 “하지만 민간의 반도체, 배터리 등의 사업 협력은 정부가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현대차와 오스트라바 공과대학 등이 '미래 모빌리티 기술 협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모습. 김동욱 현대차 전략기획실 부사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기념촬영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