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부끄럽다.
이 시대에 군 동원 비상계엄이 가능하다 생각했을까. 국회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어떻게 계엄이 실행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을까. 정상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계엄 선포 2시간 반만에 국회가 참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해제를 의결했다.
계엄을 해제하야 하는 윤 대통령은 선포 6시간만에 해제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와 더불어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 무대에 K컬처 열풍까지 불러온 2024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국정의 구심점이 돼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격을 흔들고 국정을 비상 상태로 만들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담화문에서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 했다.
국민 70% 이상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데 국민을 팔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비상계엄이 아닌 국민 70% 이상의 비판여론에 호응하는 게 우선 할 일이다.
2년 이상 국민 압도적 다수가 비판해도 오불관언으로 가지 않았던가. 그나마 어쩔 수 없이 국민 앞에 나섰던 두세 번 기자회견에서도 동문서답으로 일을 키웠다.
국민적 의혹에 묵묵부답으로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가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내민 실패한 비상계엄으로 정국을 흔들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계엄 가능성 질문을 두고 ‘계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대’라며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답했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계엄을 건의했단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유례없는 탄핵정치, 예산 삭감 등을 구체적 사례로 들며 반국가 세력이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고 있다며 계엄 필요성을 말했다.
특히 국회가 “범죄자 집단 소굴이 됐고 국가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 탄핵 남발 같은 입법권력 오남용은 충분히 지적할 만하다.
그러나 종북 반국가 세력의 자유민주주의 위협이란 인식 또는 주장은 과장되거나 시대착오적이다.
비상계엄이 아니라 국회 권력남용에 정면으로 지적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국민 지지가 바닥이다.
대통령 자신의 국민 신뢰 추락이 국정 동력을 잃게 만드는 근원이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지 않는가. 김 여사가 거론되는 명태균 사태는 아직도 의혹이 확산 중이다.
일부에선 탄핵 예산 삭감 문제 못지않게 김 여사 특검, 명태균 사태 등이 대통령의 상식적 판단을 어렵게 만든 심리적 요인이 아니었나 보기도 한다.
지난 헌정사에서 10여 차례 비상계엄이 있었다.
가장 근래에 있던 1972년 유신 비상계엄과 1980년 신군부 비상계엄 포고령 대부분이 위헌이었다고 민주화 이후 최종 판결이 났다.
그런데 44년이 지난 민주화 이후 시대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생각한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대통령의 실패한 리더십과 야당의 사법리스크 방탄이 공생해 온 구조에서 대통령의 자진 추락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있다.
비상계엄으로 대처해선 안 될 일이지만, 정권과 사법기관을 압박하기 위한 민주당의 입법권력 남용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사법적 책임을 정치적 권력투쟁으로 돌파하겠단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대통령 자격이 없단 걸 보여줬다.
일부에선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에 내란죄를 물어야 한다고 한다.
적어도 대통령직의 자진 사퇴든 탄핵추진이든 불가피해 보인다.
국정 주체들의 갑작스런 공백과 정치권의 혼돈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