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께 사실 말씀 드릴 게 있어요."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이 문장을 듣자마자 저는 눈치를 챘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고 분위기를 녹이려다 무슨 내용일지 맞히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되레 진땀을 뺐습니다.
결국 제 예상이 맞았고, 그녀는 자신의 연애 대상이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연애하는 상대를 지칭할 때 언제나 애인이라는 표현을 썼고, 애인에 대한 고민상담은 언제나 여성향이었습니다.
다른 지인들이 이 지인에게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쓰며 그녀의 연애사 근황을 물을 때마다 곤란한 표정을 짓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대학시절 동성을 좋아한다고, 동성 결혼을 꿈꾸며 이민까지 알아보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당시 치기어린 마음에 그 친구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궁금증을 해소했기에 더 이상 궁금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었습니다.
반년 이상 봐온 지인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심지어 저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누구보다 쿨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으나 제 반응에는 삐걱거림이 생겼습니다.
로봇이 된 듯 엉뚱한 질문을 한다거나 갑자기 지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아니 로봇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연애를 한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고, 저는 자칭 게이 프렌들리한 사람이기에 그 연애 역시 자연스러워야 마땅했습니다.
거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털어놓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털어놔 주는 그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더 크게 축복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헛소리가 나왔나봅니다.
더더욱 자연스러워지려다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진 것입니다.
저에겐 아직 그 특별한 고백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지인의 연애는 그저 그런 맛이어야 하는데 저한테는 아직 마라맛인거죠. 그래서 더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 자신을 숨기려다 오히려 고장이 난 것입니다.
지금도 단체 톡방에서 얘기가 나올 때면 저는 유난히 커밍아웃을 한 지인에게 관심을 둡니다.
가장 근황이 궁금한 것도 그 지인입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게 누군가에게 큰 불편일 수 있는데 제 마음 속에서는 그 특별함이 잘 거둬지지 않나 봅니다.
앞으로 이런 고백은 늘어날 테고, 자연스러운 고백이 더 많아지길 저는 바라는데요. 그렇다면 저는 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연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