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리브랜딩된 국순당의 '백세주'. (사진=김성은 기자)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국순당은 옛 문헌에 존재하는 우리 술을 되살리는 '술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격동의 근대사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이 땅의 전통주를 사명감 아래 복원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동안 국순당이 복원한 전통주는 이화주, 송절주, 쌀머루주, 백하주, 옥수수술 등 30여종에 이릅니다.
약주로 분류되는 백세주도 '복원주' 중 하나입니다.
고려시대 명주 '백하주'의 제법인 생쌀발효법을 적용한 술이죠. 제품명은 조선시대 향약집성방과 지봉유설에 나오는 구기자로 빚은 술 이야기에서 착안해 지었습니다.
우리 쌀과 전통 방식의 밀 누룩, 인삼, 오미자, 구기자 등으로 빚은 백세주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기분 좋은 산미와 은은한 감미를 지니며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특징입니다.
지난 1992년 출시 후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전국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장되다시피 한 전통주를 부활시켜 대중주 시장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위치한 국순당 '횡성 양조장'에 진열된 백세주 변천사. (사진=김성은 기자)
올해로 출시 32년을 맞은 백세주는 지난 9월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통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의 갈색 병으로 패키지를 변경하고, 단맛은 줄이고 과실향을 더해 음식과의 조화가 극대화되도록 했습니다.
주 타깃층을 MZ세대로 옮긴 만큼 여러 방면에서 젊어진 것입니다.
국순당은 복원한 전통술에 고유번호를 매기는데, 백세주의 번호는 0번입니다.
'우리 누룩으로 좋은 술을 빚는다'는 국순당의 정체성이 담긴 동시에 우리 술 복원 사업의 시초가 된 술입니다.
지난 2016년 주류 최초로 정부가 지정하는 대한민국 우수문화상품에 지정된 우리나라 문화상품이기도 합니다.
22년간 국순당에 몸담은 박선영 생산본부장은 "2000년대 초반 술집 테이블마다 백세주가 한 병씩 놓여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백세주 매출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국내 주류시장 유행 주기가 굉장히 빨라진 가운데 우리는 백세주를 '100년 향기가 흐르는 술'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 백세주 하면 건강함 또는 어른들이 마시는 술을 떠올렸지만, 이를 탈피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술로 거듭나려 한다"며 "이에 음용감에 변화를 주는 등 대중적이면서 가치적인 측면에서 진화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천강변 청정지역에 자리한 '횡성 양조장'
백세주를 비롯한 국순당의 술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양조장에서 빚어지고 있습니다.
횡성 양조장은 '술(酒)이 샘(泉) 솟는다'는 의미를 가진 주천강(酒泉江)변 해발 500m 청정지역에 자리합니다.
인근 지하 340m 청정수와 직접 키운 누룩을 좋은 햇빛과 강원도 청정 바람으로 말려 잡균과 나쁜 냄새를 제거해 사용합니다.
2004년 준공한 횡성 양조장은 국내 최대 규모로, 탁주·약주·기타주류 등 71가지 제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하루 생산량은 백세주 15만~20만병, 막걸리 12만~15만병 수준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백세주가, 3~4일은 막걸리가 생산 라인을 차지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이 곳에서는 백세주 4억3000만병, 막걸리 8억병 등 총 13억병이 만들어졌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백세주 양조에 사용되는 전용쌀인 '설갱미', 설갱미와 물을 빻고 있는 모습, 완성된 술이 포장되는 모습, 발효 과정에 있는 술을 보관하는 술탱크. (사진=김성은 기자)
지난 6일 방문한 횡성 양조장 내에는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습니다.
강태경 국순당 생산본부 품질보증팀 과장의 안내에 따라 백세주 생산 라인을 둘러봤는데요. 공정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를 맡으며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체감했습니다.
먼저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된 양조 전용쌀 '설갱미'를 물과 함께 빻습니다.
미세한 구멍이 많은 설갱미는 유리당과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술맛이 깔끔한 쌀입니다.
통상 고두밥으로 술을 빚는 것과 달리 국순당은 생쌀을 이용한 '생쌀발효법'으로 백세주와 생막걸리 등 주요 제품을 빚습니다.
생쌀발효법은 생쌀 가루와 상온의 물을 그대로 사용해 술이 완성될 때까지 높은 열을 가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영양소 파괴가 적으며, 에너지 절감 효과는 80%가량에 이릅니다.
빻은 설갱미는 12가지 재료, 배양한 효모와 함께 술탱크에 담깁니다.
전분이 알코올로 변화하는 발효 과정을 거치면 술이 탄생합니다.
이때 술이 익어가며 '뽀글뽀글' 끓는 소리를 냅니다.
이후 압착·제상, 열처리, 저온저장, 제성, 여과 과정으로 맛을 끌어올리고 엄격한 위생 관리를 통과한 술은 병입·포장돼 소비자에게 전해집니다.
우리 술을 해외로…국순당의 날갯짓
1970년에 설립된 국순당은 누룩을 생산하는 회사로 첫발을 뗐고, 백세주를 선보이며 대표 전통주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1993년 남양주 퇴계원의 막걸리 공장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막걸리 생산에 나선 국순당은 유통기한이 6개월인 캔막걸리 '바이오 탁'을 시작으로 '막걸리 르네상스'를 열었습니다.
2010년대 '우국생', '옛날 막걸리', '대박' 등의 막걸리를 선보였으며, 현재 '국순당 생막걸리'와 '국순당 쌀막걸리', '1000억 유산균 막걸리' 등이 대표 제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박선영 국순당 생산본부장이 백세주를 들고 있다.
박 본부장은 지난 2002년 국순당 연구소에 입사해 백세주와 막걸리 등에 대한 연구와 생산을 맡고 있다.
(사진=김성은 기자)
국순당은 일본, 미국, 중국, 동남아 등 60여개국으로 우리 술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K-드라마의 인기로 막걸리에 대한 호응도가 높은데요. 쌀향과 누룩향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바나나·복숭아 향이 가미된 '플레이버 막걸리'를 선호합니다.
국순당은 일반 막걸리, 복원주, 증류주 등으로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박민서 국순당 혁신사업본부 기업마케팅팀장은 "입문용으로 적합한 플레이버 막걸리 다음으로 일반 막걸리와 프리미엄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애를 쓰고 있다"며 "정부, 관련 협회와 협업해 우리 술을 알리고, 해외 한식당에 찾아가 술을 전달하기도 한다.
국내외에서 고객과 만나는 접점을 많이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 3대 주종은 막걸리, 약주, 증류주"라며 "국순당은 백세주를 통해 약주 시장을 개척했고, 생막걸리 출시로 막걸리 시대를 열었다.
계열사를 통해 생산되는 증류 소주도 소비자 사랑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