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일본의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지난 4월27일 결정했다.
일본은 사도광산에 조선인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전시물 설치를 약속하며 한국 정부의 동의를 끌어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에 있는 사도광산은 '니시미카와긴잔'(西三川砂金山)과 '아이카와쓰루시긴긴잔'(相川鶴子金銀山) 등 2개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니가타현 사도에 있는 사도광산의 상징적 채굴터인 아이카와쓰루시긴긴잔의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 모습.(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정부가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유족과 우리 정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릴 계획이었으나 일본 측 대표인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등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며 우리 정부가 불참을 결정한 건데요.
예고된 참사…뇌관 된 '사도광산'
이날 오후 1시 사도섬 서쪽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진행된 추도식에는 일본 측 인사만 참석했습니다.
사실상 반쪽짜리 추도식인 셈입니다.
앞서 외교부는 추도식 하루 전인 지난 23일 긴급공지를 통해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겠다"고 공지를 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우리 정부의 불참을 두고 되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에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노동자 등 전체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일본 측에서 묵살해왔는데요.
이날 열린 추도식을 목전에 두고서도 우리 정부와 일본 측의 조율 문제로 계속 잡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추도식을 주최한 단체는 일본 정부가 아닌 일본의 민간단체입니다.
공식 명칭도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조선인 노동자 같은 표현이 빠져있습니다.
피해자 유가족의 항공료, 숙박비 등도 일본 측이 아닌 우리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본 정부는 우리 외교부가 요구한 '차관급' 참석만 맞춰줬을 뿐 추도식 조율 과정에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석 인사 발표도 차일피일 미루다 추도식 이틀 전에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을 공개한 게 대표적입니다.
앞서 정부는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행을 지키기 위해 일본 측의 주장을 수용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요구한 조선인 강제동원 등을 포함한 사도광산의 전체적인 역사를 알리고 전시와 연례행사 성격의 추도식을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편향외교'하더니…명분도 실익도 잃었다
외교부는 처음 합의 사실을 알릴 당시만 해도 "전시와 추도식이 한국인만이 아닌 '일본인을 포함한 모든 사도광산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어 "매년 7~8월경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해 추도식이 열릴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때와 일본의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당시 일본은 강제 노역의 실상을 반영한 강제동원 정보센터 설치를 우리정부와 합의해 지난 2020년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개관했습니다.
실상을 살펴보니 전시물은 오히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됐습니다.
일본은 산업유산 정보센터 위치를 군함도에서 1000㎞가 넘는 거리에 있는 도쿄 개관에 군함도를 찾는 관광객이 당시 실상을 알기 어렵도록 했습니다.
내년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일본을 '협력자'로 규정하며 좋은 관계 설정을 위해 공을 들여왔는데요. 일본과는 2년 동안 일본 정상과 12번 정상회담을 가졌고, 셔틀외교(국가 간 합의 도출을 위한 상호 순방 외교)를 복원하기도 했을 만큼 편향적인 외교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지난해 강제동원 피해의 과거사를 덮겠다며 면죄부를 주는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외교부의 수장이던 박진 전 장관은 이런 상황에 관해 “물컵의 남은 반을 일본의 호응으로 채우겠다”고 언급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반 컵을 채울 기미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사도광산 추도식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남은 반을 채우라는 태도가 여전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는 일본에 끌려다니며 당시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한 역사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을 막지 못한 셈입니다.
‘외교 실패’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