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고객센터 이용약관 청소년정책 개인정보처리방침 광고안내
ⓒ2024 DreamWiz
뉴스 > 정치 [뉴스토마토프라임] "2030 여성의 외침을 허하라"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가 손글씨 메시지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쾌했다.

상쾌했다.

통쾌했다.

유쾌·상쾌·통쾌의 이른바 3쾌.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라고 한 혁명가 옘마 골드만(1869~1940)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란 피의자'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를 이끈 MZ세대(2030대) 여성 얘기다.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친 순간, 군부 독재를 경험한 국민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두려움도 잠시, 한 손에 응원봉을 쥔 2030대 여성들이 나섰다.

민중가요로 뒤덮인 집회 현장이 K-팝이 흘러나오는 문화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힘의 대결 대신 축제로 만든 핵심 축. 이들이 민주주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실제 그랬다.

현실의 모순을 숨기지 않았다.

은폐는커녕 드러냈다.

우회로를 택하는 비겁함도 없었다.

내가 춤출 수 없는 미래는 나의 미래가 아니지 않나. 숨 막히는 엄중함은 '해학'으로, 비장함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피아를 가르는 분열은 다 함께 어울리는 통합으로 재편했다.

 

 

'내란동조 국힘(국민의힘) 해체!',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

 

윤석열 탄핵소추안 1차 표결을 한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응원봉을 든 2030대 여성이 속속 모여들었다.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20대 여성이 전체 집회 인구(27만명으로 추산)의 18.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운동권 마지막 세대인 50대 남성(13.9%)이 그 뒤를 이었다.

그다음은 30대 여성(10.6%). 20대 남성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집회 문화도 바꿨다.

기존에 없었던 나눔 문화 확산. 익명의 불특정 다수가 커피 전문점 등에 '100만원' '500만원' 등의 선결제를 했다.

시민들의 나눔 문화는 이후 정치권으로 확산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회 가족'을 위해 500만원을 선결제했다.

탄핵의 활시위를 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수감 전 커피 '333잔'을 선결제했다.

굿즈(팬 상품) 등을 나누는 K-팝 팬들의 연대 문화 정치 집회로 들어온 셈이다.

 

 

처음은 아니다.

2030대 여성들의 연대는 이전부터 있었다.

집회 대신 '촛불문화제' 용어를 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반대 집회. 헌정사상 첫 헌법재판소에 의한 파면을 이끈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에도 2030대 여성들은 기꺼이 참여했다.

여성 혐오 범죄에 맞선 대규모 시위나 한국판 '미투'(Me Too·나는 고발한다) 역시 한국 여성 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기억하는가.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추모집회를. 잊었는가. '엔(n)번방 방지법' 제정 촉구 시위를. 그리고 2024년 딥페이크 성 착취 규탄 집회를. 여성은 늘 거기에 있었다.

그곳에서 광장의 정치를 이끌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로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에겐 장미도 필요하다 

 

그 정치적 함의는 '빵'(생존)과 '장미'(인권). 지난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직물 공장 여성 노동자 시위. 일명 '빵과 장미' 파업인 이 대규모 여성 시위를 시작으로, 세계 1차 대전(1914∼1918년) 전후 여성 참정권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후 1980년대 '미·소 냉전 체제'의 균열,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과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넘었다.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여성은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발언이 대표적. 그는 지난 8일 팟캐스트 '매불쇼'에서 변화된 집회 문화를 언급하며 "어느 순간 자세히 보니까 주된 연령층이 20~30대 여성이었다.

깜짝 놀랐다"며 "20~30대 남성들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여자분들이 집회에 많이 나온다고"라고 말했다.

진행자의 제지에도 그 교수는 "(집회 참가자에 여성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철학적이냐"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2030(대) 남성들이 집회 현장에 보이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깨어있는 여성들을 쫓아서라도 시위 현장에 나타나길 바란단 내용의 사르카즘(Sarcasme·풍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라고 사과했다.

 

 

틀렸다.

인권을 침해하는 풍자는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은 우리 사회가 불관용 해야 할 유일한 영역. 여성을 정치 객체로 보는 갑을 사고 방식이자, 전형적인 남성들의 '백래시'(backlash·반동)가 아닌가. 

 

다시 시작이다.

광장 곳곳에 장미가 폈다.

성모 마리아의 '신성한 장미'부터 2030대 여성들의 '주황색 오스틴 장미'(꽃말-즐거움)까지.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열찬 외침.' "나에게 장미를 허하라." 큰 바위의 균열은 시작됐다.

 

 

최신형 정치부장

newstomato.com | 최신형 기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