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과 2024년 윤석열씨 탄핵 정국을 비교해 보면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묘한 모습이 여럿 발견됩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관련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때는 2016년,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국정농단 정국에서 그 누구보다 "박근혜 탄핵"을 목청껏 외쳤습니다.
촛불집회의 함성을 타고 이 시장의 정치적 위상도 급부상했습니다.
본인 말마따나 '변방 장수' 성남시장이 단숨에 유력한 야권 대권후보로까지 뛰어 오른 겁니다.
2016년 12월9일 여의도 국회에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됐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선 혹시라도 박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될까 봐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집결해 탄핵 주장 릴레이 연설과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이재명 시장도 만사를 제쳐놓고 국회로 왔습니다.
2016년 12월9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릴레이 연설무대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당시 이 시장의 연설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용하던 수첩과 노트어플을 뒤져봐도 그때 연설 내용을 적어놓은 걸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다른 의원들이 발언을 할 때와 달리 이 시장이 연설을 시작하자 벌떼처럼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정치 유튜버들도 막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민주당 쪽 유튜버들은 대부분 이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이 시장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시장이 로텐더홀 한쪽 공간에 마련된 무대에서 연설을 마치자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쓰이는 1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민주당 의원들이었습니다.
자기들 쪽으로 와서 같이 '박근혜 탄핵' 구호를 외치자는 겁니다.
이 시장은 즉시 그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 시장 자리는 좌석의 중앙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원들이 잠시 공간을 내준 겁니다.
이를테면 꼽사리였던 거죠.
이 시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연신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이는 이 시장이나 의원들로서 손해 볼 게 없는 구도였습니다.
이 시장으로선 고군분투하며 야권의 대권주자로 막 부상하던 시기에 민주당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의원들로선 혹시나 이 시장이 정말 대선에 도전할 경우 그와 함께 있었다는 모습을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홍보할 수 있으니까요.
2016년 12월9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농성장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사진첩에서 당시 찍은 사진을 보니 이 시장 주위엔 김현미·이석현·김한정·유은혜·김정우 전 의원, 남인순·유동수·박정 의원 등(사진 왼쪽부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장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사진이 찍혔던 의원들 중 훗날 이 시장이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을 때 이재명캠프에 합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8년 뒤 국민들은 또 한 번의 탄핵 정국을 맞게 됐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도모한 겁니다.
자칫 국회가 우왕좌왕했다면 윤씨의 쿠데타 시도는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국회가 침착하게 대응한 덕에 쿠데타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이 대표는 윤씨가 대국민 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복귀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 계엄군으로부터 국회를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만약 이 대표가 본인의 체포를 우려해 피신했거나 민주당 의원들에게 몸조심부터 주문했다면, 역사는 뒤바뀌었을 겁니다.
적어도 윤씨의 비상계엄 선포를 대하는 이 대표의 판단만큼은 적확했습니다.
국회에서 윤씨의 비상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이 대표는 윤석열씨 탄핵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1일이 지난 12월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습니다.
12월3일 윤석열씨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시민들에게 국회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사진=이재명 민주당 대표 유튜브 캡처)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이 대표는 '변방 장수'였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비켜준 자리에 겨우 꼽사리를 꼈습니다.
8년 뒤 그는 민주당 대표가 됐습니다.
윤석열씨의 친위 쿠데타를 신속히 제압하고 내란 수괴의 탄핵을 이끌어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씨에 대한 파면이 결정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이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입니다.
8년 전 탄핵 정국 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8년 전 이 대표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사진을 찍었던 8명 중 현재까지도 의원직을 유지하는 이는 단 두 명에 불과합니다.
김현미 전 의원과 유은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에서 각각 국토교통부 장관과 교육부총리까지 지냈지만, 지금은 언론에서 이름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석현 전 의원도 국회부의장까지 했지만 잊혔습니다.
이 대표가 역사에 기록될 사람으로 남을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잊혀진 사람이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계속)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newstomato.com | 최병호 기자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관련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때는 2016년,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국정농단 정국에서 그 누구보다 "박근혜 탄핵"을 목청껏 외쳤습니다.
촛불집회의 함성을 타고 이 시장의 정치적 위상도 급부상했습니다.
본인 말마따나 '변방 장수' 성남시장이 단숨에 유력한 야권 대권후보로까지 뛰어 오른 겁니다.
2016년 12월9일 여의도 국회에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됐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선 혹시라도 박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될까 봐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집결해 탄핵 주장 릴레이 연설과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이재명 시장도 만사를 제쳐놓고 국회로 왔습니다.
2016년 12월9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릴레이 연설무대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당시 이 시장의 연설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용하던 수첩과 노트어플을 뒤져봐도 그때 연설 내용을 적어놓은 걸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다른 의원들이 발언을 할 때와 달리 이 시장이 연설을 시작하자 벌떼처럼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정치 유튜버들도 막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민주당 쪽 유튜버들은 대부분 이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이 시장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시장이 로텐더홀 한쪽 공간에 마련된 무대에서 연설을 마치자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쓰이는 1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민주당 의원들이었습니다.
자기들 쪽으로 와서 같이 '박근혜 탄핵' 구호를 외치자는 겁니다.
이 시장은 즉시 그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 시장 자리는 좌석의 중앙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원들이 잠시 공간을 내준 겁니다.
이를테면 꼽사리였던 거죠.
이 시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연신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이는 이 시장이나 의원들로서 손해 볼 게 없는 구도였습니다.
이 시장으로선 고군분투하며 야권의 대권주자로 막 부상하던 시기에 민주당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의원들로선 혹시나 이 시장이 정말 대선에 도전할 경우 그와 함께 있었다는 모습을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홍보할 수 있으니까요.
2016년 12월9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농성장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사진첩에서 당시 찍은 사진을 보니 이 시장 주위엔 김현미·이석현·김한정·유은혜·김정우 전 의원, 남인순·유동수·박정 의원 등(사진 왼쪽부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장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사진이 찍혔던 의원들 중 훗날 이 시장이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을 때 이재명캠프에 합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8년 뒤 국민들은 또 한 번의 탄핵 정국을 맞게 됐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도모한 겁니다.
자칫 국회가 우왕좌왕했다면 윤씨의 쿠데타 시도는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국회가 침착하게 대응한 덕에 쿠데타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이 대표는 윤씨가 대국민 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복귀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 계엄군으로부터 국회를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만약 이 대표가 본인의 체포를 우려해 피신했거나 민주당 의원들에게 몸조심부터 주문했다면, 역사는 뒤바뀌었을 겁니다.
적어도 윤씨의 비상계엄 선포를 대하는 이 대표의 판단만큼은 적확했습니다.
국회에서 윤씨의 비상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이 대표는 윤석열씨 탄핵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1일이 지난 12월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습니다.
12월3일 윤석열씨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시민들에게 국회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사진=이재명 민주당 대표 유튜브 캡처)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이 대표는 '변방 장수'였습니다.
민주당 의원들 비켜준 자리에 겨우 꼽사리를 꼈습니다.
8년 뒤 그는 민주당 대표가 됐습니다.
윤석열씨의 친위 쿠데타를 신속히 제압하고 내란 수괴의 탄핵을 이끌어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씨에 대한 파면이 결정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이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입니다.
8년 전 탄핵 정국 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8년 전 이 대표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사진을 찍었던 8명 중 현재까지도 의원직을 유지하는 이는 단 두 명에 불과합니다.
김현미 전 의원과 유은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에서 각각 국토교통부 장관과 교육부총리까지 지냈지만, 지금은 언론에서 이름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석현 전 의원도 국회부의장까지 했지만 잊혔습니다.
이 대표가 역사에 기록될 사람으로 남을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잊혀진 사람이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계속)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