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차철우 기자, 김유정 인턴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 멈췄던 민주당의 '상법 개정' 논의가 재개됐습니다.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연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어려운 대내외 경제상황을 이유로 재고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던 정부·여당이 힘을 잃으면서 민주당의 의지를 꺾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상법 개정을 강행하는 대신 재계의 우려가 큰 '배임죄' 완화는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론을 낼 지 주목됩니다.
'국장 떠나는 개미'엔 공감…개정 방향엔 '이견'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19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초 지난 4일 열릴 예정이었던 상법 개정 토론회는 3일 밤 급작스럽게 선포된 비상계엄으로 잠정 연기돼 왔는데요. 이날에는 경영진과 투자자 측을 대표하는 7인이 각각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 확대 방안의 필요성과 부작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서 경영진과 투자자 측 모두 'MZ 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층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는 것이 문제라는 것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상법 개정이 시행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을 보였습니다.
특히 경영진 측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을 향한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격이 빈번해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지난 2019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3%의 지분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노렸던 상황을 예로 들며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 비전보다 배당 확대를 위한 단기적 이익 실현을 추구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프레스기기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심팩'의 정연중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주주의 이해와 회사의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 주주 간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 이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투자자 측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아니고서는 주주의 손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으며, 소액주주들을 보호해야 한국 자본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연구소장은 "마치 소액주주와 지배주주가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회사가 앞으로의 이익을 위해 이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득을 하면 안 따라올 투자자가 어디 있겠나"라고 소액 주주를 바라보는 사측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우선 지적했는데요.
이어 그는 "기업은 상장을 하는 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기업들이 소액주주들의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 보장되면 코스닥 기업을 장기 보유할 주주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배임죄 개정 등 '보완입법' 가능성↑
민주당은 이날 오간 토론들을 기반으로 상법 개정의 방향을 정한다는 방침입니다.
앞서 지난달 14일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같은 달 28일에는 한국거래소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의 의지를 재차 다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대표가 꾸준히 '타협'의 시그널을 보내온 만큼, 최종 개정 방향은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이날도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이 대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기업과 주주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중립적인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습니다.
이 대표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고 또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활동이 가능해서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성장·발전하는 데 기업들이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해야 된다 생각한다"고 말했는데요.
이어 그는 "그 과실을 주주들도 함께 나누고 또 그 통로가 잘 확보되면 더 많은 국민들이 자산 증식의 기회를 갖게 되고, 기업들로서는 자금 조달을 쉽게 하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모두에게 득이 되는 그런 세상으로 잘 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때문에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이지만, 재계 측에서 주장하는 일부 내용이 수용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임죄 완화'입니다.
앞서 이 대표는 삼성 사례를 거론하면서 "기업인 배임죄 문제를 공론화하자"고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이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 등에서 "기업에 부담이 되는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등은 더 신중히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재명의 '중도 확장' 니즈를 공략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로서는 재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면 '합리적 중도'의 이미지를 쌓을 수 있고, 기존의 민주당 안대로 개정을 강행하더라고 지지층의 굳건한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도 아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여야 정치권을 통틀어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확보한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인 셈입니다.
되레 불안한 쪽은 대통령 탄핵으로 여당 지위를 잃은 국민의힘입니다.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밀고 있는 국민의힘은 이날에도 민주당의 상법 토론회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는데요.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식 과도하고 무리한 상법 개악은 우리 기업과 경제에 자해적인 폭탄이 될 것"이라며 "합리적인 핀셋 규제를 통해 기업 인수 합병이나 물적 분할 과정에서 선량한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윤한홍 정무위원장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합리적 대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진양·차철우 기자, 김유정 인턴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