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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종합 45년만 '비상계엄'…영화 아닌 현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긴급 대국민담화 발표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이후 4일 새벽 국회 주변에 모인 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이진하 기자)

 

[뉴스토마토 이진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척결'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6시간 만에 해제를 선언했습니다.

한밤중 이뤄진 비상계엄으로 여의도에 많은 시민들이 모였는데요.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후에도 시민들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역사상 계엄령 선포 사례는 총 17회로 늘었습니다.

 

 

이승만, 계엄령 1호…결국 '제주 4·3' 사태 

 

우리나라의 첫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25일입니다.

당시 여수에 주둔 중이던 조선국방경비대 14연대가 제주 사건을 진압하라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출병 명령을 거부했는데요. 이를 빌미로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는 이듬해 2월 5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계엄령은 제주도까지 확대됐는데요. 두 번째 계엄령은 같은 해 말인 12월 31일까지 지속됐고, 이때 일어난 역사적 비극이 바로 제주 4·3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계엄도 잇따랐습니다.

1950년 7월 8일부터 1952년 4월 7일까지 비상계엄이 2차례, 경비계엄이 2차례 각각 발령됐는데요. 앞서 1950년 전쟁이 발발하기 전 제2대 총선에서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됐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기반이 약해지면서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한 것이 배경입니다.

이에 1952년 5월 25일 이른바 부산정치파동 사건을 시작으로 부산과 경남, 전남 등 계엄령이 선포됐는데요. 일부 국회의원이 체포·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이 계엄령은 두 달 뒤인 7월 해제됩니다.

 

 

이후로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 혁명 당시 서울에 4시간 동안 경비계엄이 발령됐습니다.

이후 6월 7일까지 51일 동안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선포됐는데요. 당시에는 이승만 정권의 하야를 외치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에서 6·25 시기와 1960년 혁명까지 크고 작은 계엄령을 총 10차례나 선포했습니다.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전일빌딩 10층.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모습이 재현돼 있다.

(사진=뉴시스)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 '독재 수단'

 

계엄 선포는 박정희 정권에서도 이어집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당시 박정희 소장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헌정사상 11번째로 전국에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계엄 해제 선언은 이듬해 12월 6일에 하면서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됩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1964년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습니다.

 

 

이후 1972년 10월에는 '유신헌법'을 선포하며 전국에 비상계엄을 발동했습니다.

당시 간선제 등을 골자로 한 유신헌법 제정과 유신체제 강화가 이어졌습니다.

1979년 10월 18일에는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화 시위가 거세진 부마 항쟁에 따라 부산·경남 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이는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후 한동안 유지됐고, 1981년 1월 24일까지 440일간 유지됐는데요. 

 

이때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했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1981년 1월 계엄령이 해제됩니다.

이처럼 반복된 계엄 선포는 민주화 항쟁 뒤인 1987년 헌법 개정으로 수정되는데요.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 의사만으로 계엄을 즉각 선포할 수 없도록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규정했습니다.

또 재정 국회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가 가능하며 국회의 사후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집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긴급 대국민담화 발표에서 비상계엄령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YTN 뉴스 화면 캡처)

 

"계엄설 거짓선동"…윤석열정부 민낯

 

지난 3일 오후 10시 25분쯤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후 22건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다"며 "국가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생중계 담화 형식으로 약 6분간 발표문을 낭독하며 계엄 선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약 6시가 만인 오늘 새벽 4시 27분쯤 생중계 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를 해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 선포를 했다"며 "그러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 자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향해 야당 의원이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냐는 질문에 계엄 의사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계엄이 해제된 후 국방부에서 공식 확인한 결과 김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요. 그동안 '계엄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거듭 밝혀온 만큼, 논란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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