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상 속 약간의 공포가 하나 있는데요.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굳게 닫혀 있는 변기 뚜껑을 들어야 할 때 공포감이 들어요. 애석하게도 보고 싶지 않은 것들과 마주한 적이 많기 때문인데요. 그럴 때면 누군지도 모를 문제의 장본인을 원망하곤 합니다.
지난 주말 지인 결혼식에 방문했다가 또 불운한 일을 겪었습니다.
성스러운 결혼식을 축하하고 화장실을 들렀는데 그만 또 남의 흔적을 본 것입니다.
좌절하며 뒷걸음질로 빠르게 화장실 칸막이 문을 닫고 나왔죠. 뒤에 줄을 선 중년 여성이 해당 칸에 들어가려 하자 저는 그녀를 빠르게 말렸습니다.
아무래도 변기가 막힌 것 같다고 말이죠. 그녀가 험한 꼴을 보는 것을 말릴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안도했습니다.
그렇게 얌전히 나머지 칸에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뒤에 있던 이 여성이 갑자기 문제의 칸을 탐방하러 떠났습니다.
굳이 확인사살하려는 그녀를 애타게 말리고 싶었지만 이 여성의 발걸음은 거침없었습니다.
그녀는 물을 몇 차례 내리더니 막힌 게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공중화장실 변기가 막힌 상황에서 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저는 단정 지었기에 후속 행동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제 눈엔 결단코 보이지도 않던 변기 뚫는 기구가 그녀의 눈엔 단번에 보였나봅니다.
이 여성은 화색을 보이며 세면대 아래에 있는 기구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곤 당찬 걸음으로 다시 문제의 칸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들어가자마자 몇 번의 시도 끝에 “잘 내려간다”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공포가 될 수 있었던 문제의 칸은 그녀의 행동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 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지만요.
찰나에 벌어진 일이지만 저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남은 까닭은 그 여성이 참으로 멋져보였기 때문입니다.
전 항상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면 되돌아 나오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아주 간헐적으로 대신 물을 내려주곤 했지만 그마저 역류 공포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은 가족도 아닌, 누군지도 모를 이가 저지른 일을 그 자리에서 해결해 냈습니다.
그녀에겐 그 어떤 책임이나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문제를 털어냈습니다.
그녀 덕에 한 칸이 원활히 돌아가면서 화장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타인에 의해 막힌 변기를 뚫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럴 자신은 없기도 하네요. 얼마나 더 큰 사람이 돼야 그런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게 될까요.
(사진=변소인 기자)
며칠 전에는 지방에 있는 한 공장의 화장실에 방문했다가 처음 보는 문구를 마주했습니다.
'변기 막힐 경우 직접 청소하세요. 각층마다 청소도구 있음'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변기가 막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문구는 많이도 봤지만 이런 문구는 처음이었습니다.
맞네요. 일을 저질렀다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죠. 어쩌면 당연한 일들을 하지 않아서 괜한 화장실 영웅이 탄생하는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