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벌써 30년도 훌쩍 넘은 일입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찬바람이 섞인 3월이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교수는 다리를 절뚝이며 강의실로 들어섰습니다.
“반 대표 누구야? 너네들은 선생 대우를 이렇게 밖에 못하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노교수는 호통만 남긴 채 곧바로 나가버렸습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첫 수업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 다음주 수업. 반 대표는 교탁 옆에 책상을 정성스레 옮겨 놨습니다.
지금 대학 강의실 개인 책상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엔 앉으면 A4 용지 하나 정도 겨우 놓을 수 있는 일체형 책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황토색 책상 위에는 ‘컨닝’을 위한 온갖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반 대표는 그나마 깨끗한 책상을 찾아서 휴지에 물을 묻혀 이리저리 닦아 정성스레 선생님의 책상을 마련했습니다.
수업은 그제서야 시작됐고, 반전은 이어졌습니다.
강의는 ‘신문학 원론’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는 주제가 펼쳐졌습니다.
“모두들 따라해 본다.
시또양” “시또양” “더 크게, 또박또박” “시-또-양”
시또양(citoyen)은 프랑스어로 ‘시민’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들이 상대를 향해 부른 단어입니다.
윤석열 씨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학기 수업은 시또양, 즉 ‘시민정신’에 집중됐습니다.
시민의 개념과 시민정신이 필요한 이유, 시민정신의 위대함, 시민정신과 민주주의 등 온통 ‘시민’으로 가득찼습니다.
저절로 연결되는 프랑스혁명사. 프랑스혁명에 담긴 자유, 평등, 박애의 의미. 시민이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의 자발적 깨우침’ 등이 교실을 메웠습니다.
초중고 12년간 군사독재 시절 교과서에서는 단 한마디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내용입니다.
머릿 속에 ‘시민정신’이라는 개념이 서지 않았으니 당시에는 이해하기가 무척 난감했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에 붙잡혀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셨던 리영희 교수님은 이제 갓 스물을 넘겼거나 육박한 어린 아이들에게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각인하려고 했던 겁니다.
해가 거듭되고 살아가면서 그토록 노 교수님이 강조한 ’시민‘ ’시민정신‘은 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야욕을 채우려던 윤석열 일당은 계엄의 엄중함과 무자비함을 도외시한 채 친위쿠데타를 주도했습니다.
이를 막아선 것은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시민이었습니다.
초등학생들까지 계엄의 부당성을 알고 국회 앞에 모였고,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함께 외쳤습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도 45년 전과 달랐고, 이제는 뼛속까지 박힌 ’제복입은 시민‘이라는 시민정신이 기본 개념으로 장착돼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은 겁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비롯한 계엄 일당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 합니다.
명백히 내란인데, ’뭘 잘못했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시민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작고하신 지도 14년이 흘렀습니다.
어린 제자들에게 ’시민정신‘을 깨우쳐 주려한 그 때가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아직도 또렷합니다.
들어도 모를 강의에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을 떨치기 위해 바라본 창 밖의 노란 개나리. 몇 달 뒤 개나리 필 무렵이 다시 찾아오면 많은 것이 변해 있을 겁니다.
버틴다 해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내란 수괴와 종범들은 창살 밖 개나리를 보면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겁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newstomato.com | 오승주 기자
봄이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찬바람이 섞인 3월이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교수는 다리를 절뚝이며 강의실로 들어섰습니다.
“반 대표 누구야? 너네들은 선생 대우를 이렇게 밖에 못하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노교수는 호통만 남긴 채 곧바로 나가버렸습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첫 수업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 다음주 수업. 반 대표는 교탁 옆에 책상을 정성스레 옮겨 놨습니다.
지금 대학 강의실 개인 책상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엔 앉으면 A4 용지 하나 정도 겨우 놓을 수 있는 일체형 책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황토색 책상 위에는 ‘컨닝’을 위한 온갖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반 대표는 그나마 깨끗한 책상을 찾아서 휴지에 물을 묻혀 이리저리 닦아 정성스레 선생님의 책상을 마련했습니다.
수업은 그제서야 시작됐고, 반전은 이어졌습니다.
강의는 ‘신문학 원론’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는 주제가 펼쳐졌습니다.
“모두들 따라해 본다.
시또양” “시또양” “더 크게, 또박또박” “시-또-양”
시또양(citoyen)은 프랑스어로 ‘시민’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들이 상대를 향해 부른 단어입니다.
윤석열 씨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학기 수업은 시또양, 즉 ‘시민정신’에 집중됐습니다.
시민의 개념과 시민정신이 필요한 이유, 시민정신의 위대함, 시민정신과 민주주의 등 온통 ‘시민’으로 가득찼습니다.
저절로 연결되는 프랑스혁명사. 프랑스혁명에 담긴 자유, 평등, 박애의 의미. 시민이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의 자발적 깨우침’ 등이 교실을 메웠습니다.
초중고 12년간 군사독재 시절 교과서에서는 단 한마디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내용입니다.
머릿 속에 ‘시민정신’이라는 개념이 서지 않았으니 당시에는 이해하기가 무척 난감했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에 붙잡혀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셨던 리영희 교수님은 이제 갓 스물을 넘겼거나 육박한 어린 아이들에게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각인하려고 했던 겁니다.
해가 거듭되고 살아가면서 그토록 노 교수님이 강조한 ’시민‘ ’시민정신‘은 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야욕을 채우려던 윤석열 일당은 계엄의 엄중함과 무자비함을 도외시한 채 친위쿠데타를 주도했습니다.
이를 막아선 것은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시민이었습니다.
초등학생들까지 계엄의 부당성을 알고 국회 앞에 모였고,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함께 외쳤습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도 45년 전과 달랐고, 이제는 뼛속까지 박힌 ’제복입은 시민‘이라는 시민정신이 기본 개념으로 장착돼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은 겁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비롯한 계엄 일당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 합니다.
명백히 내란인데, ’뭘 잘못했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시민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작고하신 지도 14년이 흘렀습니다.
어린 제자들에게 ’시민정신‘을 깨우쳐 주려한 그 때가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아직도 또렷합니다.
들어도 모를 강의에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을 떨치기 위해 바라본 창 밖의 노란 개나리. 몇 달 뒤 개나리 필 무렵이 다시 찾아오면 많은 것이 변해 있을 겁니다.
버틴다 해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시민정신이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내란 수괴와 종범들은 창살 밖 개나리를 보면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겁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