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석좌교수가 2023년 8월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한반도 국제포럼'(KGF 2023)에서 온라인으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KGF 2023)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공개 거론하며 강경 대응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격인 그는 현대 국제정치학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인사 중 한 명이자, 김태효가 시카고대 박사과정에 있을 때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합니다.
미어샤이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물론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이 미국과 서방의 책임이라고 비판합니다.
1990년에 미국과 서방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할권이 현 위치에서 1인치도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 독일 통일을 받아들이게 해놓고는 그 약속을 어겼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이 2008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시킬 의사를 밝힌 것(아들 부시 정부 시절 나토의 부쿠레슈티 선언)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대표하는 '공격적 현실주의'는 "강대국들은 상대적 힘을 극대화시키려 하며 패권적 지위가 궁극적 목표"라고 봅니다.
그래서 현실주의 이론들 가운데서도 지정학과 '강대국 결정론'을 더 중시합니다.
"중국은 미국이 걸어온 길 따르게 될 것…생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
그런데 그런 판단과 인식에 있어 이데올로기, 이념은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지금 미국에 문제인 건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빼놓지 않습니다.
만일 중국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놀라운 경제발전을 지속하게 될 경우,… 중국은 미국이 걸어온 길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은 미국이 서반구를 지배하는 것처럼 아시아를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무정부적 국제체제하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2014년 출간)
경제력이 강해진 중국이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공격적 국가가 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사악해서도, 이데올로기 문제도 아니라 모든 강대국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겁니다.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소련 외교정책을 거의 30년 동안 장악했던 스탈린 역시 냉엄한 현실주의 논리에 입각했고 1939년부터 1941년까지 그가 독일과 협력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스탈린의 후계자들은 이데올로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요약한다면 소련의 외교정책은 주로 상대적 힘의 계산에 입각한 것이었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들은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소련도 이런 측면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합니다.
본질적으로 미국은 냉전 시기 동안 소련에 대해 행동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중국을 대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가능한 한 다수의 중국의 이웃나라들과 균형 연합을 형성하고자 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냉전 당시 소련을 봉쇄하는 데 결정적으로 효과적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동맹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하지만, 여기서도 주요한 판단 기준은 이념이 아닙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현안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효 "각국 이익 도모하기에 앞서 가치에 관한 입장 명확히 해야"
위 대목에서 미어샤이머가 "본질적으로 미국은…중국을 대할 것이다"라고 쓴 구절은, 김태효가 2021년에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 논문에서 "지난 5년 사이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구절을 연상시킵니다.
표현은 비슷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은 갈라집니다.
김태효는 철저히 이념적입니다.
그는 "각국은 이익을 도모하기 앞서 가치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21세기 한국 외교의 추세는 세계의 보편 추세인 자유이념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외교를 국익이 아니라 가치, 즉 이념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이 그해 6월 중국을 '체제에 대한 도전', 러시아를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나토 정상회의 자리였습니다.
김태효의 신념이 윤석열정부의 정책으로 나타난 겁니다.
윤석열정부 외교는 내내 가치외교, 진영외교 정확히는 이념외교였습니다.
특히 '공산전체주의' 북한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사실상 흡수통일론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정책, 미어샤이머가 비판하는 네오콘 닮아가"
지난해 한국어판 나온 미어샤이머의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해제 '현실주의 이론가 미어샤이머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교수는 양자의 '결정적' 차이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대전제에 동의하더라도, ('미어샤이머 제자' 김태효가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윤석열정부는 더 나아가 북한·중국·러시아는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국가로 보고, 일본과 미국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문명적 '가치 동맹'으로 본다는 점에서 미어샤이머와 결을 달리한다.
…'자유의 북진'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윤석열정부의 정책은 미어샤이머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어샤이머가 비판하고자 했던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나 네오콘을 닮아가는 측면이 있다.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 외교·안보는 세상을 '문명 대 비문명'으로 가르는, 낡디낡은 '이념의 전사'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