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2024년 2월9일부터는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해도 보통살인죄가 적용돼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미혼모 A씨가 갓 태어난 영아를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살인죄를 적용받았음에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A씨는 충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울자 가족에게 들킬까 염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스스로 지킬 힘이 전혀 없는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고 약 6개월의 구속기간 동안 잘못을 반성할 시간을 가진 점, 출산 당시 20세도 되지 않은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자식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점 등을 양형이유로 설명했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40대 친부가 2023년 7월14일 경기도 용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태아가 장애를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조기 출산해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친부에게 징역 5년, 친모에게 징역 3년, 외조모에게 징역 4년을 각각 선고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됐지만 재판부는 반성하는 점, 장애아의 양육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아살해죄는 1953년 도입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분만 중이나 분만 직후의 비정상적 심리상태와 특수한 동기가 적법한 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을 낮춘다는 측면에서 보통살인죄의 감경적 구성요건으로 규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본인의 치욕을 은폐한다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한다는 심리적·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아의 생명권을 약하게 보호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오히려 저항할 능력이 없는 영아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현재의 상식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므로 영아살해죄 규정이 폐지된 겁니다.
영아를 유기한 경우의 법정형도 단순 유기죄보다 낮았었는데요. 이로 인해 아이를 낳고도 치욕 은폐나 양육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내다 버려도 생명에 지장만 없다면 중하게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돌봄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영아를 유기하는 행위 역시 곧바로 영아의 생명권에 위협이 되므로 영아유기죄의 폐지를 통해 더 엄하게 처벌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최근 사건을 보면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보통살인죄가 적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보통살인죄에서 5년 미만의 징역이 선고되려면 형을 감경하는 감경 사유가 있어야 하고,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경우에 할 수 있으므로 앞서 살펴본 사건의 피고인들은 형의 양정에 있어 감경 사유를 적용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폐지한 목적이 엄벌을 통해 영아의 생명권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에도 관대한 처벌로 인하여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가 존재하면서 영아에 대한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생긴 결과일 가능성도 있는데요. 법을 적용하는 법원에서 먼저 양형기준 등을 마련해 인식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도 보통살인죄의 양형기준 중에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에 대한 범행을 특별양형인자로 두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아살해죄를 폐지한 목적에 걸맞게 영아살해에 대한 양형기준을 따로 마련해 더 두텁게 보호하고 오랜 기간 굳어진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벌만으로는 영아에 대한 살해나 유기를 예방하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미혼모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인 포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미혼모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경제적 지원을 위한 정책을 늘려 미혼모가 영아를 살해하거나 유기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newstomato.com | 김민승 기자
이전까지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미혼모 A씨가 갓 태어난 영아를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살인죄를 적용받았음에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A씨는 충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울자 가족에게 들킬까 염려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스스로 지킬 힘이 전혀 없는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고 약 6개월의 구속기간 동안 잘못을 반성할 시간을 가진 점, 출산 당시 20세도 되지 않은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자식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점 등을 양형이유로 설명했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40대 친부가 2023년 7월14일 경기도 용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태아가 장애를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조기 출산해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친부에게 징역 5년, 친모에게 징역 3년, 외조모에게 징역 4년을 각각 선고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됐지만 재판부는 반성하는 점, 장애아의 양육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아살해죄는 1953년 도입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분만 중이나 분만 직후의 비정상적 심리상태와 특수한 동기가 적법한 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을 낮춘다는 측면에서 보통살인죄의 감경적 구성요건으로 규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본인의 치욕을 은폐한다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한다는 심리적·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아의 생명권을 약하게 보호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오히려 저항할 능력이 없는 영아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현재의 상식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므로 영아살해죄 규정이 폐지된 겁니다.
영아를 유기한 경우의 법정형도 단순 유기죄보다 낮았었는데요. 이로 인해 아이를 낳고도 치욕 은폐나 양육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내다 버려도 생명에 지장만 없다면 중하게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돌봄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영아를 유기하는 행위 역시 곧바로 영아의 생명권에 위협이 되므로 영아유기죄의 폐지를 통해 더 엄하게 처벌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최근 사건을 보면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보통살인죄가 적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보통살인죄에서 5년 미만의 징역이 선고되려면 형을 감경하는 감경 사유가 있어야 하고,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경우에 할 수 있으므로 앞서 살펴본 사건의 피고인들은 형의 양정에 있어 감경 사유를 적용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폐지한 목적이 엄벌을 통해 영아의 생명권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에도 관대한 처벌로 인하여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가 존재하면서 영아에 대한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이 생긴 결과일 가능성도 있는데요. 법을 적용하는 법원에서 먼저 양형기준 등을 마련해 인식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도 보통살인죄의 양형기준 중에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에 대한 범행을 특별양형인자로 두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아살해죄를 폐지한 목적에 걸맞게 영아살해에 대한 양형기준을 따로 마련해 더 두텁게 보호하고 오랜 기간 굳어진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벌만으로는 영아에 대한 살해나 유기를 예방하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미혼모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인 포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미혼모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경제적 지원을 위한 정책을 늘려 미혼모가 영아를 살해하거나 유기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