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이종용 선임기자) 국내 은행의 하노이 지점에 들어서면 베트남 현지인 직원들이 베트남 인사말인 '신짜오' 대신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합니다.
한국계 은행이라 당연할 수 있지만 먼 이국의 수도에서 듣는 한국어는 반가우면서 낯설었습니다.
베트남서도 은행원 '고급인력'
'K금융 베트남 생존전략' 기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바로 한국인 주재원들과 현지 직원들입니다.
하노이 시내의 한국계 은행 법인 본점에서는 한자릿 수의 주재원과 수십명의 현지인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요. 태어난 국가와 살아온 궤적이 다른 이들이 같은 회사의 소속으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은행원은 고급 인력에 속합니다.
하노이대학교과 하노이국립대, 외상대학교 등 베트남 최고 수준의 대학 졸업생이 많습니다.
대학교 시절 드라마와 노래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계 금융사 취업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습니다.
현지 수십개 지점망을 갖춘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하노이 지점에는 한국어에 능숙한 직원들을 영업 창구에 전진배치됐습니다.
신한은행 팜풍 지점의 응우옌 티투이반 부지점장은 지난 12일 지점에 방문한 취재팀에게 통역 없이 한국어로 지점 곳곳을 소개했습니다.
국내 은행들은 하노이 시내 지점에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들을 전진배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신한은행 팜풍 지점의 응우옌 티투이반 부지점장이 지점 업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한국어 교육에 진심
KB국민은행 하노이 지점의 경우 지점장과 고참 주재원이 번갈아가며 현지 직원들을 상대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2019년 지점 개점 초기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1명이었지만 지금은 8명으로 늘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한국어 교재들이 차이가 없고 어려워서 간편 교재를 만들어 볼 정도로 직원 교육에 진심이었습니다.
김현래 하노이 지점장은 "한국어 교육 진도가 왜 이렇게 빠르냐는 타박을 듣기도 한다"고 멋쩍게 웃으며 "그래도 직원들이 한국말을 써보겠다고 한국어로 '결재 해주세요 지점장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면 참 기특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직원은 "한국이나 한국어에 관심이 참 많다"며 "한국에 들를 일이 있다고 하면 눈이 내린 풍경을 찍어달라는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은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근무하는 국내 은행 주재원들은 도이머이 세대(2030세대)의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우리은행의 하노이 스타레이크 지점 직원들이 고객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사과 인색·낮잠 문화
물론 일하는 업무 공간이 웃음꽃만 피는 것은 아닙니다.
주재원들은 베트남 직원들이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며, 초반에는 오해를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주재원은 "우리나라 같으면 사과할 상황이 아니더라도 미안하다고 운을 떼고 말하지 않나"며 "베트남에서는 사과의 의미가 우리나라보다 무겁다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주재원은 "업무를 완수하려는 책임감이 적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해하면서 맞춰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베트남 은행들은 대부분 점심 시간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데요. 지난 11일 점심 시간이 끝날 무렵 지점에 도착한 취재팀도 직원 전용 출입문을 통해 조용히 들어가야 했습니다.
현지인 직원들은 대낮에 불이 꺼진 어두운 사무실에서 의자나 바닥에 매트를 깔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주재원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이제는 익숙하다"고 말했습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일을 보러 오는 사무직 고객이 많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영업을 하는 것을 방침으로 두고 있습니다.
베트남 은행 대부분은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 시간 동안 영업점 문을 닫는다.
은행 직원들은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기업은행 하노이 지점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도이머이 세대' 잠재력 주목
싱가포르와 홍콩에 이어 베트남 인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종일 베트남우리은행 법인장은 취재팀과 인터뷰 내내 베트남의 잠재력을 자랑하는 데 열변을 토했습니다.
박 법인장은 "하노이 법인본사에 있는 직원들을 보면 우리나라 직원들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한다"며 "싱가포르와 홍콩이 금융의 요지가 됐던 이유 중 하나가 영어 사용률 아니겠나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베트남 '도이머이 세대'가 굉장히 똑똑한데, 처음 우리 금융을 접목시킬 때는 더딘 거 같았지만 리테일로 전환해보니 습득력이 굉장히 빠르다"고 칭찬했습니다.
도이머이는 베트남어로 ‘쇄신’이라는 뜻으로, 도이머이 세대는 1986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목표로 베트남이 수립한 도이머이 정책 시기에 태어난 2030세대를 말합니다.
<(11)편에서 계속>
하노이=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