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2012년 가을이었다.
한 신문사의 주간지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난, 알고 지내던 취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경찰이 전직 세무공무원의 비리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는데 검찰이 이 공무원을 비호한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에게 물어 당시 수사를 벌이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찰과 어렵게 연결이 됐다.
'불법 브로커'로 활동하며 사업가들로부터 뒷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몇 번의 설득 끝에 약속 장소에 나온 경찰의 얘긴 충격적이었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마장동 육류업자 김모씨로부터 세무 조사 무마 청탁을 대가로 현금과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였는데, 두 사람이 함께 골프를 친 인천 S골프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검찰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여섯 차례 기각했다는 것.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검 차ㅇㅇ 형사5부장은 윤 전 서장의 동생인 윤대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첨단범죄수사과장의 연수원 한 기수 선배로 둘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인 윤석열 사단이라는 것. 윤석열, 차ㅇㅇ 등이 윤 전 서장과 같이 해당 골프장을 이용했는데 검찰이 윤 전 서장을 비호하는 사이 CCTV나 카드 영수증 등 관련 증거가 인멸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검찰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모두 팩트였고 그 배경이 취재의 영역이었는데,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어 보였다.
법조팀장을 지낸 한 선배에게 제보 내용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윤석열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할 때 정몽구를 구속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들고 가 총장을 압박한 게 윤석열이라고 했다.
경찰이 하는 얘길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기사 쓰려면 취재를 빡세게 해야 할 거라는 당부도 함께.
지검 반장을 지낸 또 다른 선배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대뜸 “니가 윤석열을 알아?”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윤석열은 진짜 검사라고 말한 그는 윤대진과 윤석열이 소윤대윤으로 불리며 막역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누굴 비호할 사람이 아니라고 뭘 제대로 알고서 얘길하라고 했다.
윤석열은 당시 검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전설적 존재였던 것이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열린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윤석열 후보자가 답변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나는 선배들의 윤석열 옹호가 잘 와닿지 않았다.
경찰의 말은 믿지 말라던 선배들은 검찰이 흘려준 대로 기사를 쓰기 바빴고, 출입처를 감시하라는 정언명령은 유독 검찰청 앞에서만 멈췄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반응에 맥이 풀려버린 사이, 법조팀장을 지낸 또 다른 선배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는 국세청 출입할 때 윤우진을 본 적이 있는데 기자들에게 엄청 접대를 하더라며 그때도 사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이후 국세청에서 윤우진에 대해 대기발령을 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더라며 냄새가 나니 잘 파보라고 했다.
검찰 눈치를 보던 경찰의 만류로 결국 기사를 쓰진 못했지만, 그날 이후 난 윤석열과 그를 칭송하던 선배들을 종종 생각했다.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 뒤 좌천된 그를 세상이 정의로운 검사의 상징으로 떠받들 때도, 난 그가 미덥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벼락출세할 땐,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인에게 제보 내용과 함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를 총장으로 지목하며 역사에 기록될 최악의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검찰이 흘려준 대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챗GPT 이미지. 검은 그림자를 가리키는 PROPECUTORS는 검사를 일컫는 PROSECUTOR의 오기다.
그 인사참패의 과정인 2019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윤석열이 경찰 수사를 받던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준 일도 드러났다.
경찰 얘기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그를 칭송하던 선배들은 말이 없었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은 믿을 수 없다며 검찰 쪽 논리를 편집회의에서 들이밀거나, 검찰총장 감찰 때는 살아있는 권력수사를 막기 위한 찍어내기 감찰이라고 반발했을 뿐이었다.
이런 언론인들의 지원 덕분이었을까. 윤석열은 '검찰 쿠데타'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임기 절반이 지난 오늘, 정의로운 진짜 검사라던 윤석열은 탄핵과 하야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윤석열 자신이 했던 말만으로도 지금의 윤석열을 끌어내릴 이유가 차고 넘친다는 게 시민사회의 평가다.
그는 이제 강직하고 의로운 검사가 아닌, 자신의 권력에 취한 분별 없는 공처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를 추켜세웠던 선배들이 지금 윤석열 정권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비단 그들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항소심까지 무죄가 나온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을 두고 절차적 정의를 말하던 그 수많은 평기자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물론 누구든 실수하고 착각할 수 있다.
검찰 출입을 했다면 나라고 달랐을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9할은 그를 영입했던 보수정당이 아니라, 조중동을 위시한 대부분의 레거시 미디어였다.
10여년 전 취재 수첩을 뒤지며, 반성하지 않는 최악의 대통령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 뒤에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언론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무참하다.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
newstomato.com | 오승훈 기자
한 신문사의 주간지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난, 알고 지내던 취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경찰이 전직 세무공무원의 비리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는데 검찰이 이 공무원을 비호한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에게 물어 당시 수사를 벌이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찰과 어렵게 연결이 됐다.
'불법 브로커'로 활동하며 사업가들로부터 뒷돈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몇 번의 설득 끝에 약속 장소에 나온 경찰의 얘긴 충격적이었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마장동 육류업자 김모씨로부터 세무 조사 무마 청탁을 대가로 현금과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였는데, 두 사람이 함께 골프를 친 인천 S골프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검찰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여섯 차례 기각했다는 것.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검 차ㅇㅇ 형사5부장은 윤 전 서장의 동생인 윤대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첨단범죄수사과장의 연수원 한 기수 선배로 둘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인 윤석열 사단이라는 것. 윤석열, 차ㅇㅇ 등이 윤 전 서장과 같이 해당 골프장을 이용했는데 검찰이 윤 전 서장을 비호하는 사이 CCTV나 카드 영수증 등 관련 증거가 인멸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검찰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모두 팩트였고 그 배경이 취재의 영역이었는데,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어 보였다.
법조팀장을 지낸 한 선배에게 제보 내용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윤석열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할 때 정몽구를 구속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들고 가 총장을 압박한 게 윤석열이라고 했다.
경찰이 하는 얘길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기사 쓰려면 취재를 빡세게 해야 할 거라는 당부도 함께.
지검 반장을 지낸 또 다른 선배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대뜸 “니가 윤석열을 알아?”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윤석열은 진짜 검사라고 말한 그는 윤대진과 윤석열이 소윤대윤으로 불리며 막역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누굴 비호할 사람이 아니라고 뭘 제대로 알고서 얘길하라고 했다.
윤석열은 당시 검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전설적 존재였던 것이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열린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윤석열 후보자가 답변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나는 선배들의 윤석열 옹호가 잘 와닿지 않았다.
경찰의 말은 믿지 말라던 선배들은 검찰이 흘려준 대로 기사를 쓰기 바빴고, 출입처를 감시하라는 정언명령은 유독 검찰청 앞에서만 멈췄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반응에 맥이 풀려버린 사이, 법조팀장을 지낸 또 다른 선배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는 국세청 출입할 때 윤우진을 본 적이 있는데 기자들에게 엄청 접대를 하더라며 그때도 사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이후 국세청에서 윤우진에 대해 대기발령을 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더라며 냄새가 나니 잘 파보라고 했다.
검찰 눈치를 보던 경찰의 만류로 결국 기사를 쓰진 못했지만, 그날 이후 난 윤석열과 그를 칭송하던 선배들을 종종 생각했다.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 뒤 좌천된 그를 세상이 정의로운 검사의 상징으로 떠받들 때도, 난 그가 미덥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벼락출세할 땐,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인에게 제보 내용과 함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를 총장으로 지목하며 역사에 기록될 최악의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검찰이 흘려준 대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챗GPT 이미지. 검은 그림자를 가리키는 PROPECUTORS는 검사를 일컫는 PROSECUTOR의 오기다.
그 인사참패의 과정인 2019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윤석열이 경찰 수사를 받던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준 일도 드러났다.
경찰 얘기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그를 칭송하던 선배들은 말이 없었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은 믿을 수 없다며 검찰 쪽 논리를 편집회의에서 들이밀거나, 검찰총장 감찰 때는 살아있는 권력수사를 막기 위한 찍어내기 감찰이라고 반발했을 뿐이었다.
이런 언론인들의 지원 덕분이었을까. 윤석열은 '검찰 쿠데타'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임기 절반이 지난 오늘, 정의로운 진짜 검사라던 윤석열은 탄핵과 하야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윤석열 자신이 했던 말만으로도 지금의 윤석열을 끌어내릴 이유가 차고 넘친다는 게 시민사회의 평가다.
그는 이제 강직하고 의로운 검사가 아닌, 자신의 권력에 취한 분별 없는 공처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를 추켜세웠던 선배들이 지금 윤석열 정권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비단 그들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항소심까지 무죄가 나온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을 두고 절차적 정의를 말하던 그 수많은 평기자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물론 누구든 실수하고 착각할 수 있다.
검찰 출입을 했다면 나라고 달랐을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9할은 그를 영입했던 보수정당이 아니라, 조중동을 위시한 대부분의 레거시 미디어였다.
10여년 전 취재 수첩을 뒤지며, 반성하지 않는 최악의 대통령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 뒤에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언론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무참하다.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