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제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윤석열정부에서 유명무실해졌다.
지난 2023년 국회 야당 추천 몫인 당시 최민희 방통위 상임위원 후보자 위촉을 7개월가량 미루면서 상임위 구성이 삐그덕댔고, 지난해 7월말에는 6일간 사상 초유 0인 체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에서는 방통위원장 임명 하루 만에 방송문화진흥회, KBS 이사 선임이 이뤄졌다.
YTN 사영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등도 윤정부 들어 강행된 일들이다.
방송·통신 분야 정책 총괄하는 막중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방송장악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얻게 됐다.
방송장악을 위한 독단적 행정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근간은 합의제의 악용이다.
위원장을 포함해 5인 체제로 이뤄지는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나머지 위원들은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각각 추천한다.
방통위 설치법에 명시된 '회의는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점을 근거로 수싸움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임위원 임명 여부가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방통위가 2023년 이후 줄곧 대통령 몫 추천 2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다수결을 활용하는 합의제 기구이지만, 사실상 찬반의 갈림이 나올 수 없는 구조로 전락시켰다.
합의제 특성상 1인은 합의제 기구라는 취지를 위반하고, 2인은 의견이 갈릴 경우 의결 자체가 어렵다.
2인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이견이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합의제 기구에서는 최소 3인의 의사결정자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야당 주도로 방통위 회의 의사정족수를 3인 이상으로 규정하는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이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과방위)를 통과했지만, 여야 구분 없이 해당 입법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다.
과방위를 통과한 방통위법에는 5인의 방통위 회의 최소 의사정족수를 3인으로 두는 것 외에도 의결정족수를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에서 출석 위원 과반수로 변경하는 것도 포함됐다.
국회가 추천한 방통위원을 정부가 30일 이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추천 후보에 대한 임명 지연을 막겠다는 취지다.
법원도 지난해 10월부터 2인 체제 방통위 의결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이 지명한 2인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 중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소수를 배제하고 다수가 단독처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방통위 의사정족수 개정을 '포스트 방통위'를 위한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외 방송통신 시장은 융합 추세로 나아가며 빅테크, 인공지능(AI)과 접목이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로 산업이 융합되면서 이용자 보호를 위한 규제틀 마련은 물론, 국내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한 정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방통위의 유명무실로 빚어질 이용자 피해 확산과 국내 산업 침체 악화를 막아야 한다.
방통위가 시대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변화의 첫 단추를 하루빨리 끼울 필요가 있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