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자연으로 가는 길’
전남 구례군의 이 슬로건은 2024년 구례가 가고 있는 길의 지향을 보여줍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 산수유와 재첩국의 마을인 이곳 구례에서 새로운 ‘녹색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로 ‘흙 살리기’ 운동을 벌여 유기농산물 생산을 늘리고 이 농산물로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꿈, 농촌유학타운을 조성해 가고 싶은 구례에서 살고 싶은 구례, 나아가 체류형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꿈.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달의 좋은 정책’으로 구례군이 벌이는 다양한 실험에 주목했습니다.
지난 22일 뉴스토마토 유튜브 프로그램 ‘임혜자의 야단법석’에 출연한 김순호 구례군수는 “구례를 단순한 농촌이 아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생명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구례가 가장 먼저 벌인 사업이 바로 ‘탄소중립 흙 살리기 운동’입니다.
김 군수는 “사실 흙은 거대한 탄소 저장고”라며 “지구 토양은 탄소 2조5000억톤 가량을 머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공기 중에 떠 있는 탄소량의 3배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이어 “흙 속의 풍부한 유기물과 미생물은 작물의 생산성을 월등히 높여주는 까닭에 흙을 살리는 것은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농가 소득도 올리는 1석3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2일 김순호 구례군수(오른쪽)과 임혜자 K-정책금융연구소 기획위원이 뉴스토마토 유튜브 프로그램 '야단법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기후위기를 늦추는 열쇠가 흙에 있다고 본 구례군은, 지난해 탄소중립 흙 살리기 선포식과 흙 살리기 국회 토론회, 구례밀 짜장면 페스티벌을 개최해 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올해는 토양 정밀 조사와 볏짚 환원사업 등을 중점 추진하는 한편, 인식 확산을 위한 흙 살리기 박람회를 개최했습니다.
땅이 살아나면 작황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 군수는 “기능성 다시마액비를 시설채소(오이, 애호박)에 적용한 실증시험을 추진한 결과 칼륨, 마그네슘, 망간 등 주요 영양분의 함량이 증가했고 과육의 단단한 정도를 나타내는 경도는 5.7%, 수확량은 10.6% 향상되는 결과가 나왔다”며 “실증시험에서 우수한 효과를 보인 기능성 다시마액비를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유기농법으로 흙을 살리고 더불어 농가와 식탁까지 살리려면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방소멸에 맞서 정주 인구를 늘려야 가능한 목표입니다.
구례군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농촌유학타운 조성에 나선 이유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어른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20일부터 22일까지 열린 구례군 탄소중립 흙 살리기 박람회 홍보영상. (사진=구례군)
유학 가정을 위해 구례군은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옛 계산분교 부지에 39억원을 들여 주택 14가구, 커뮤니티센터 1동, 주차장, 텃밭 등 조성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역 내 주택(빈집, 농촌유학가정 거주)의 주택 수리 보조사업을 통해 주거시설을 확보해 농촌유학가정을 추가 유치해 지방소멸위기에 대응한다는 전략입니다.
김 군수는 “현재 초등학교 1~2학년 학생 67여명 정도가 구례에 유학 와 있다.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자연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만끽하고 있다”며 “한 학부모가 ‘서울에서는 사회의 부품처럼 느껴졌는데 이곳에 내려와 내가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하다’고 할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유학 가정의 높은 만족도는 올 2학기 신청 학생이 3년 만에 3배가량(67명) 늘어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구례군의 생활인구(지역에 체류하는 인구까지 아우르는 개념)는 전국에서 이례적으로 지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 1분기(1~3월) 생활인구 산정 결과, 구례에는 정주인구(2만4134명)의 무려 18.4배인 45만명이 체류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정주인구 대비 생활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혔습니다.
방문자수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22년 275만527명으로 200만명 선을 돌파한데 이어 작년에는 279만8683명으로 늘었습니다.
주요 관광지 방문객들이 늘면서 올해는 3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남 구례 광의초등학교로 농촌유학을 온 고강혁 군(가운데)과 아버지 고영근 씨, 어머니 이명우 씨. 농촌유학을 계기로 세 가족은 농촌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사진=구례군)
김 군수는 인터뷰에서 “지리산 케이블카가 구례의 30년 숙원사업인 만큼 군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며 “군에서는 국립공원 계획 변경안을 환경부에 제출했고, 승인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현재 지리산 국립공원에 연간 50만대의 차량이 통과하면서 여러 환경 문제와 재해가 발생한다.
도로를 중심으로 식물생태계 교란종이 서울 중랑천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기도 했다.
지리산 케이블카는 환경을 훼손하는 사업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