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12월23일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지도자들이 대륙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대륙군(미국 독립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8년 전 자신한테 군대 지휘권을 부여했던 문서를 의회 의원들한테 반납했다.
세계 최강 영국군을 격퇴하고 미국을 독립시키는 데 성공한 총사령관이, 군대가 임무를 완수했다면서 지휘권을 반납하고 자신의 직위해제와 나아가 군대 해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총사령관과 그 부하들은 경건한 자세로 일어서 있었다.
19세기초 화가 존 트럼불이 이 장면을 담아 그린 대형 유화를 미국 의회는 의사당 안에 걸어두고 있다.
대륙군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병대였다.
군주제를 지키는 ‘왕의 군대’는 귀족이 장교를 맡고 용병이나 하층민으로 하급 병사를 충원했다.
이와 달리 대륙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목적 아래 시민들이 신분 구분 없이 참여했다.
왕의 군대는 권력자에 대한 절대 충성과 강한 외적 군기를 강조했으며, 국민의 군대는 공동체의 집단 약속인 헌법 가치에 대한 충성과 민주적인 규율을 추구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두 번째 ‘국민의 군대’가 탄생했다.
프랑스 시민들이 외적의 침공에 맞서 공화정을 지키려고 국민 개병제를 도입했다.
미국 독립군이나 시민혁명기 프랑스 군대는 ‘왕의 군대’를 뛰어넘는, 강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근대 한국 국방의 역사는 일제의 국권 강탈에 맞섰던 의병 전쟁과 1920~1930년대 독립군, 1940년대 광복군에서 시작된다.
그 무렵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 운영 방식 등을 보면 우리 독립군과 광복군이 바로 ‘국민의 군대’였다.
뜻을 품은 선각자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했으며, 호랑이를 잡던 포수 출신 홍범도가 독립군 고급 지휘관이 된 사실에서 보듯이 신분 차별도 없었다.
당연히 민주적인 규율을 유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지시를 육군 고위 장성들이 거부하지 못하고 군을 정치개입 수렁에 빠트렸다.
‘국민의 군대’임을 잊고 권력자한테만 충성하며 출세를 꾀하는 잘못된 군대 문화 때문 아닌가. 배경을 보면 해방 뒤 한국 육군은 1~16대 육군참모총장을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는 옛일본 군국주의 군대 문화에 익숙했다.
오늘날 미국이나 프랑스 군대가 쿠데타에 가담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다르다.
군대가 권력자 뜻대로 악용될 수 있음을 눈으로 봤다.
필자는 ‘국군 정통성 법제화 시민사회 추진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이 활동의 목적은 국군조직법 제1조에 국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 광복군 역사를 계승하는 국민의 군대”임을 밝혀두려는 것이다.
부승찬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이 시민사회 추진위원회 제안에 공감하고 지난 10월2일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독립군과 광복군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싸웠을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선각자들이 민주적 규율로 운영했던 자랑스러운 ‘국민의 군대’였다.
국군조직법을 제안 내용대로 개정하면 국군 정통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군 장병이 시민사회 일원으로서 헌법 가치를 가슴에 새기는 계기도 될 것이다.
12·3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심사와 관련자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군의 불법 동원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군대 문화도 함께 개선해야 한다.
12월10일 폐회한 정기국회에서 국방위원회는 법률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이 개정안을 심의했다.
다음 회기에서 국회가 이 의안을 빨리 처리하길 기대한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