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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회 (마지막 존엄, 공영장례)②(현장+)존엄과 애도권 지키는 '그리다' 빈소
[뉴스토마토 신태현·차종관 기자] 하늘이 유독 맑고 푸르렀던 11월 어느 날.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화장장인 서울시립승화원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하나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온 겁니다.

유가족은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으로부터 마지막 인사를 받았을 고인은 그나마 축복 속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의 인사를 받으며 시신은 재가 됐습니다.

 

대비되는 죽음과 장례도 있습니다.

유가족이 붐비는 대기실을 지나 서울시립승화원 2층으로 올라가면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방이 나옵니다.

무연고자나 빈곤층을 위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입니다.

빈소는 소박했습니다.

4~5평 정도 크기입니다.

하지만 영정사진과 신위를 모신 분향대가 차지하는 공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빈소는 3~4명만 같이 있어도 좁았습니다.

일반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조문객, 조화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은 날은 A씨와 B씨의 공영장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엔 서로 일면식도 없었지만, 빈소가 같이 마련됐습니다.

A씨는 가족이 저소득층이고, B씨는 무연고자입니다.

 

 

저소득층인 A씨는 중국 동포입니다.

가족은 한국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합니다.

장례를 치르는 게 비용적·행정적으로 무리였던 탓에 시신을 무연고 처리해 장례를 치르게 됐습니다.

즉 시신을 인수하지 않고 포기한 겁니다.

B씨는 무연고자인데 가족이 없습니다.

때문에 평소 가까웠던 직장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왔습니다.

 

빈소가 공동으로 마련되는 건 공영장례에선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분향대엔 두 사람의 영정과 위패가 놓여 있었습니다.

각종 과일과 밥, 반찬도 마련됐습니다.

비록 공영장례였지만, 고인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그리다’ 빈소에서 공영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금부터 A님과 B님의 장례를 시작하겠습니다.

고인의 삶을 생각하면서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묵념!"

 

상주는 A씨의 남동생, B씨의 직장동료 조모씨가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습니다.

 

 

"어머니가 형을 어떻게 키웠는데…"

 

A씨의 남동생이 형의 영정을 향해 말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 상주는 향을 피우고 영정에 술을 올린 뒤 큰절을 했습니다.

수저가 밥공기 위에 꽂혔습니다.

 

장례식 사회를 맡은 자원봉사자 곽모씨가 축문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 잔 올려드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으나 고이 잘 떠나소서."

 

상주와 자원봉사자는 모두 일어나 A씨와 B씨 영정에 재배했습니다.

수저가 거둬졌고, 앳된 얼굴의 자원봉사자는 떨리는 듯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조사도 낭독했습니다.

 

이후 참여자 모두가 한명씩 헌화를 마치자 장례식은 마무리됐습니다.

시간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상주와 자원봉사자들은 서로에게 "수고하셨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저소득 시민과 무연고자 등 고인의 장례를 치른 상주와 자원봉사자들이 관을 화장터까지 운구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장례식을 마친 이들은 운구하기 전 짬을 내서 과일 음료를 나눠마시며 담소를 나눴습니다.

역시 고인을 기리는 장례식의 일환입니다.

고인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평소 고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사회를 맡았던 곽씨는 후련한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곽씨는 "올해부터 공영장례 사회를 맡았다"며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어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A씨는 가족들이 장례 비용 문제로 시신포기를 하면서 공영장례 대상이 됐다"면서 "무연고 사망자라고 표기된 분들도 사실은 대부분에게 가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 가족은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여러모로 한국에서 장례를 비용들여 치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듯 합니다.

서울시는 저소득 시민 공영장례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장례에 필요한 돈이나 행정절차조차 버거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비록 고인이지만 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장례 없이 보내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모여 고인을 배웅하면서 아픔을 회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사를 낭독한 자원봉사자 정모씨는 "장례 관련 학과를 다니다 보니까 공영장례 봉사 현장까지도 찾게 됐다"며 "고인을 잘 보내드려 보람차다"고 말했습니다.

 

B씨의 직장동료로 상주를 맡았던 조씨는 "고인에게 연고자가 없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서울시 공영장례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서울시가 공영장례를 시행한 숫자는 지난해만 1225건에 이릅니다.

올해는 9월 기준으로 1017건을 기록, 지난해보다 수치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서울시립승화원 관계자는 "많을 때는 오전에 세분, 오후에 세분 정도 모신다"며 "서울 모든 구청에서 요청이 온다"고 했습니다.

 

공영장례로 치른 고인의 유골은 파주 무연고 추모의집에 5년간 봉안됩니다.

연고자가 나타나면, 연고자의 신청을 받은 구청 요청에 따라 유골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찾아가는 이가 없다면 산골됩니다.

화장한 유골을 가루내어 산, 강, 바다에 뿌리는 겁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박만규 인턴기자 mankyu@etomato.com



newstomato.com | 차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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