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8일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처음 공표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28일 대통령실이 이를 이어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인·태 전략'원조…트럼프 대통령 1기 때 수용
'인도·태평양 전략'은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첫 총리를 하던 2007년 8월 인도 의회에서 태평양과 인도양 인접 국가들의 관계를 강화하자는 '2개 대양의 결합'을 주제로 연설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그는 총리 2기 시절인 2016년 케냐에서 열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연설에서도 "일본은 태평양과 인도양,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류를 힘, 위압과 관계없이 자유와 법의 지배,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장으로 키워 풍요롭게 할 책임을 진다"며 이를 이어갔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기 시절에 이를 수용하면서 2017년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동 대외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승리해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윤석열정부도 여기서 '자유롭고 개방된'이라는 수식어를 '자유·평화·번영'으로 바꾸면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지 2년이 흘렀는데요, 지난 주에 국회 입법조사처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 강민정 박사가 '대한민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이행 평가와 과제'라는 제목의 '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그간 진행 상황을 분석 평가했습니다.
보고서는 "지금 정부는 규범과 규칙에 기반을 둔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지역 질서 구축을 위해 미국의 인·태 전략에 철저히 보조를 맞추고 있고, 더 나아가 인·태 전략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안보대화(QUAD)의 인·태 전략과 함께 가고 있다"며 "또 더 나아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윤정부 인·태 전략, 미국에 보조 맞출 때 미래가 보장된다는 뉘앙스"
보고서는 계속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분리하는 과거의 주장은 최근에 안보 없이 경제적 번영도 없다는 주장, 즉 경제도 안보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직면하고 있다"고 윤석열정부의 '경제안보론'을 설명한 뒤 그 연장선상에서 "현 정부의 인·태 전략은 그 명칭은 물론 내용에서도 우리가 미국의 인·태 전략에 보조를 맞출 때 미래가 보장된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는데요.
그러면서 "이는 냉전을 지나 지금까지 미국이 구축하고 유지한 지역 질서가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근간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에 기반한다"고 그 근거를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어 "미국과 함께 하는 인·태 전략은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우리의 독자적인 전략을 시도 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기반하는 매우 보수적인 전략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 현 정부에서는 북방정책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북방'은 EU(유럽연합)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 및 중·동부에 위치한 신흥경제권으로, 전임 문재인정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몰도바, 몽골, 중국(동북 3성) 등 14개국을 신북방국가로 설정했습니다.
보고서는 한국 외교에서 처음 북방정책을 시작한 노태우정부 이래 문재인정부까지 명칭은 달라도 나름의 북방정책을 수립했으며,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북방정책이 없었던 김영삼정부도 세계화 정책을 통해 구공산권과의 관계 확대는 지속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북방정책이 없고, 인·태 전략에서 중국, 몽골 정도만 언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달 15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페루 리마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태 전략, 미·중·러 틀 넘어 한국만의 비전 가져야"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보고서는 "이제는 미국 혼자 냉전 시기의 안보적·경제적 공공재를 더 이상 공급하기 어렵고, 인·태 지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협력이 없이는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 주도의 현재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우리의 인·태 전략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틀을 넘어 한국만의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양자택일에 의한 국익 손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위상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인·태 전략이 도출되어야 한다△규칙 기반 국제질서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나라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공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게 가능하므로, 국제규범을 반영하여 일관되게 인·태 전략을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나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강대국에의 순응, 편승, 헤징으로 좁히는 경향이 있으므로, 우리 스스로 북한의 도발을 사전 억지하거나 만약 도발이 있다면 신속하게 그 위협요인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는 데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등 4가지 '국가 전략'을 제안했는데요. 특히 마지막 '분쟁 개입'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바로 인접하고 있는 중국·러시아의 레드라인을 신중한 고려 없이 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이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 것도 이 보고서와 같은 문제의식을 일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