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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종합 문화적 자존감


"우리나라 문학에는 소리나 모양을 나타내는 음성상징어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런 단어를 번역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 문학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하지"

 

학창 시절 문학 선생님들이 '노벨 문학상'을 언급하면 으레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이 밖에도 색에 대한 표현을 언급하는 선생님도 있었는데요. '푸른색'을 표현할 때도 '푸르스름하다' '새파랗다' 등이 사용되어 번역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학 선생님들의 생각과 달리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후 24년 만에 쾌거인데요. 이로써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나라가 됐습니다.

 

 

사실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 전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가 수상자로 발표된 후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강의 수상을 '놀라운 일'이라고 보도했는데요. 관찰자들에겐 '깜짝' 수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림원은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논평하면서 30여 년 동안 작가가 우직하게 그려온 작품세계를 언급했습니다.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세계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한강은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요. 두 소설의 내용은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작가도 이 작품을 집필하는 당시에는 압도적인 고통을 느꼈다는 고백도 나왔죠. 

 

그럼에도 한강 작가는 소설이란 형식을 통해 국가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두 사건에서 국가 폭력으로 무너진 인간의 연약함을 세상에 알렸고, 고통을 보듬었습니다.

 

 

수상 후에 우리 문학계는 물론 시름시름 앓던 출판계까지 환호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이 밖에도 <채식주의자> 등 한강 작가의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6일 만에 누적 1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작품에서 다룬 제주 4·3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도서도 함께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한강 신드롬이 불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BTS와 블랙핑크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간 K팝부터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동상을 거머쥔 <기생충> 등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후에는 OTT 등을 통해 세계에 K콘텐츠의 파워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에게 유일한 분단국가란 인식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성숙한 나라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처럼 K콘텐츠는 우리의 문화적 자존감을 높여줬지만, 우리의 정치적 현실과 언론 현실이 여전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판해야 할 언론은 비판의 기능이 상실됐고, 정치권에서는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고 있지만 작가가 언급한 제주 4·3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문학의 수용자였던 한국 문학이 진정 세계 문학의 중심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역사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본관 2층 문학실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특별 서가를 조성했다.

특별 서가에는 한강의 초기 작품인 '그대의 차가운 손', '눈물 상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부터 2016년 영국 부커상 국제 부문 수상작인 '채식주의자', 2017년 이탈리아 말레파르테 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2024년 프랑스 에밀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한 '작별하지 않는다' 등 주요 작품 14종이 비치됐다.

(사진=뉴시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newstomato.com | 이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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