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담겨 있는 육성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와 윤 대통령의 통화 녹취 파일을 공개했는데요. 녹취 파일에는 윤 대통령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을 직접 부탁했다는 정황이 담겼습니다.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소속 정당의 공천에 개입한 것인데요.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31일 공개한 통화 녹취 파일에서 윤 대통령은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명 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다.

고맙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통화는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의원이 공천받기 직전인 그해 5월9일에 이뤄졌습니다.

이어 통화 다음 날인 5월10일 김 전 의원의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 공천이 확정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명태균 "평생 은혜 잊지 않겠다"…'정치권 파장' 일파만파

 

통화 내용을 보면, 사실상 윤 대통령이 김 전 위원의 공천을 직접 당에 부탁했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 중 당에서 '말이 많다'는 대목은 "당시 윤한홍 의원 등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이 방해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노종면 민주당 의원이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명 씨가 윤 대통령 또는 김 여사와의 통화 내용을 김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인 강혜경 씨 등 제3자에게 전하는 통화 녹음이 공개된 적이 있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명 씨와 통화한 육성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민주당이 공개한 또 다른 통화 내용에선 2022년 5월9일 윤 대통령과 명 씨 통화 당시 김 여사가 윤 대통령 옆에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명 씨는 해당 통화 내용을 지인에게 전하면서 윤 대통령 바로 옆에 김 여사가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여기엔 "지 마누라(김 여사)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 했어? 명 선생님 이렇게 아침에 이래 놀라셔 가지고 전화 오게끔 만든 게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라고 하니까) (대통령이) '나는 했는데, 나는 분명히 했다'라고 마누라 보고 얘기하는 거야" "끊자마자 바로 (김 여사한테) 전화가 왔어. '선생님 윤상현(당시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화했습니다.

내일 취임식 오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당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공관위원장이었고, '내일'(2022년 5월10일)은 윤 대통령 취임식이었습니다.

명 씨는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앞서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음성 파일에 따르면, 명 씨는 지난 2022년 5월9일 강혜경 씨와의 통화에서 "사모하고 전화해 가, 대통령 전화해 가지고 (따졌다). 대통령은 '나는 김영선이라 했는데' 이라대"라며 "그래서 윤상현이, 끝났어"라고 말하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윤 대통령의 발언 중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김 전 의원 이외에도 김진태 강원지사, 박완수 경남지사를 두고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은 해당 녹취에서 "명 씨가 3월 서초 보궐 조은희 의원 당선도 자신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통화 녹취를 공개하면서 "윤 대통령이 불법으로 공천에 개입했고, 공천 거래가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헌정 질서를 흔드는 사안임을 입증하는 물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민주당이 입수한 다른 녹취에는 윤 대통령의 불법이 김 여사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내용이 수두룩하다"며 추가 폭로를 예고했습니다.

 

공천개입 당사자 일제히 "사실 아냐"…브리핑 없이 떠난 '한동훈'

 

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되자, 대통령실은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또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 명의의 언론 공지를 내고 "당시 공천 결정권자는 이준석 당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당시 윤 당선인과 명태균 씨가 통화한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고, 명 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며 별다른 의미가 없는 대화라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이와 같은 해명은 앞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한 기존 해명과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육성 공개에 따른 향후 대응책에 대해 "오늘 공지낸 것 외에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대통령실 핵심 참모진과 오찬을 한 것에 대해선 "평상시와 똑같았다"며 대통령실 내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당시 공관위원장이었던 윤상현 의원도 녹취 내용을 즉각 반박했습니다.

윤 의원은 국회에서 중진의원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공관위원 중에 어떤 분이 (공천 자료를) 가져갔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공천 자료를) 당선인한테 가져가서 보고한다는 게 있을 수 없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김 여사와 공천을 논의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된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이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동훈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연구원의 토론회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말 없이 당사를 빠져나갔습니다.

 

범야권은 윤 대통령을 향해 탄핵·하야를 촉구하는 등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임기단축을 고리로 한 헌법개정 추진 움직임도 시작됐습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에선 아직 '탄핵'에 대해 신중한 입장입니다.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가 11월1일 예정돼 있고, 다음 날인 2일 '김건희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장외집회가 계획돼 있는 만큼 여론전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장외집회 규모에 따라 본격적인 탄핵 행보에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명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