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계속 오르고 있다.
22년 2분기부터 지금까지 7번 인상되었다.
2023년 2분기 이후로는 대규모 산업용 사용자 요금만 별도로 30원/kWh이 더 올랐다.
이는 전력 공급의 경제 원리와도 맞지 않고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한국만의 현상이다.
산업용 전기는 보통 가정용 전기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
이는 대규모 공장이나 산업 현장이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공급 단가가 낮아질 수 있는 요인도 있고, 경제 전반에 걸친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한국전력의 막대한 부채 문제가 지목된다.
한국전력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소매 사업자로, 2022년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아야 하는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현재 한국전력의 부채는 약 201조 원에 달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요금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다.
요금 인상 부담은 삼성전자나 현대제철 같은 1%도 안되는 소수의 대규모 산업용 사용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이들의 부담은 2년사이 60% 이상 늘어 이제는 180원/kWh 수준에 도달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전기 요금이 비싼 독일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250원/kWh 정도로 우리보다 비싸지만, 가정용 전기요금의 70% 미만으로 유지된다.
이는 대형 산업 소비자들이 에너지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반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 전기요금 보다 오히려 높아져,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원칙적으로 보면 전기요금은 수요와 공급, 시장의 구조, 그리고 해당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기요금 조정이 경제 원리가 아닌 표와 지지율을 의식한 정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면, 한전을 통제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비용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획에 기반하여 경제 원리에 의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파는 것이 원죄였지만, 그렇다고 단기적인 부채 경감을 위해 대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전기요금은 에너지 전환과 경제의 경쟁력 유지를 반드시 염두하고 결정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인 과업이다.
화석 연료 사용을 대폭 줄이려면 무탄소 발전기 증설과 송배전망 구축에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하며, 사회와 경제의 발전 방향을 재설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시민과 기업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신뢰를 잃은 요금 인상은 단순히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되며, 에너지 전환의 대의를 위한 필연적인 조정조차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 조정의 명확한 근거와 정책적 일관성이 꼭 필요하다.
독일과 프랑스는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점진적인 전기요금 인상 방향을 정하고, 근거와 결정 과정을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이 대중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를 통해 반발을 줄이고, 시민과 기업들이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이해하며 수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결국 신뢰가 핵심이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단순히 정책이나 수치의 조정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 나아가 시민들이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 구축에 달려있다.
신뢰를 얻지 못한 정책은 실행과정에서 끊임없는 저항을 초래하게 된다.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경제적 부담이 정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사용자들은 정부와 한국전력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장기적인 협력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어렵다.
전기요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경제논리를 무시하고 투명한 원칙이 없다면 향후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한전 적자 해소를 소수의 대규모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기요금의 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시민과 기업들과의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기요금 정책만이 한국의 에너지 전환과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이룰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될 것이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