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해 강력히 규율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시사하던 데서 ‘사후 추정’ 방식에 기반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기준 자체가 모호한 데다 역차별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새롭게 도입되는 임시중지명령을 통해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공정위의 입법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공정위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당초 공정위는 ‘신속한 사건 처리’를 목표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해당 기업들이 불공정 행위를 하면 바로 제재 절차에 돌입하는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했는데요. 업계 반발 속 사전 지정 방식은 사후 추정으로 변경됐습니다.
공정위는 사후 추정을 통해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을 강력히 규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사후 추정 요건으로는 중개·검색·동영상·SNS·운영체제·광고 등 6개 분야에서 1개 회사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용자 수가 1000만명 이상, 3개 이하 회사 시장 점유율 85% 이상·각 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기업입니다.
해당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플랫폼 관련 직·간접 매출액(계열회사 포함) 4조원 미만시 제외됩니다.
이를 감안하면 국내 유력 플랫폼 중 네이버(NAVER(035420))와 카카오(035720)만 규제 가시권에 들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외국 빅테크 기업 중 구글, 애플, 메타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플랫폼 업계는 일단 ‘사전 지정’ 방식이 바뀐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인데요. 그럼에도 실효성과 역차별 등 우려가 여전해 반발하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사후 추정 요건이 충족되는 기업에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는데요. 공정거래법 위반 시 과징금은 기존 매출액의 6%에서 8%로 상향했고 반(反) 경쟁행위를 임시 중지할 수 있는 명령도 내릴 수 있게 했습니다.
입증 책임도 사실상 사업자가 지게끔 강화했습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임시 중지 명령의 경우 자의적인 법 집행이 있을 수 있다”라며 “중지 기간 동안 영업 활동이 멈추게 되면 결국 이용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없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정위의 사후 추정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구글의 경우 국내에서 1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글 코리아가 공시한 매출액은 3653억원에 불과합니다.
이에 공정위의 사후 추정 기준 제외(매출액 4조원 미만) 대상에 적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내 시장을 빠르게 침투 중인 알리·테무 등 중국 e커머스 플랫폼 역시 같은 이유로 규제망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의 경우 중개, 검색, 동영상, SNS 등 다양한 사업을 한 플랫폼 안에서 영위하지만 모호한 기준으로 혼란마저 감지됩니다.
가령 A그룹사는 사후 추정 기준을 충족하지만, A그룹의 계열사인 B사는 점유율 등 지배적 사업자의 요건에는 들어도 매출액이 모자라 제외 대상에 속하는데요. 이 경우 B사가 사후 추정 대상에 들어갈 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역차별 우려도 여전합니다.
해외에 본사를 둔 플랫폼 기업이 자료 제출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제재 등 대응이 어렵기에 결국 국내 플랫폼 기업만 옥죈다는 비판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시장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적인 시각으로만 접근을 하고 있다”라며 “공정위가 원하는 근원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