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5일 안에 창원산단 후보지 103만평의 등기부등본을 다 떼서 거래내역을 엑셀로 만들어야 하는 특명을 받은 오김배(‘갈아 만든 배’랑 비슷한 느낌적 느낌). 산단 지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명태균이 지인들을 통해 거래했을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태균이형~. 그냥 좀 알려주면 안 될까?)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마지 못해 응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챗GPT가 그렸다.
등본 발급을 위해선 지번 파악이 먼저 돼야 했습니다.
주말 밤낮으로 지번이 나온 이음지도를 출력해 오려 붙이고 소거해가며 추출하니 어느덧 월요일 오후. 전제 2500여개 지번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찾아낸 상황.(국장 보고 계시죠?) 데드라인까지는 하루 반나절이 남은 시점에서, 두 명은 지번을 마저 찾고 한 명은 등본을 발급했습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지났을까. 등본 발급하던 덕훈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악~~ 다 날라갔어요.” 헉. 무엇이 다 날라갔다는 말인가. 그동안 추출한 우리의 금쪽같은 번지가 번지점프라도 했다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안 돼~~~.
알고 보니 등본을 일괄로 발급받으려 지번별 검색 물건 70여건을 대법원 사이트 장바구니 같은 데에 모아뒀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자동 로그아웃이 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도 로그아웃하고 싶….) 등본 한 통을 발급받으려면 번지수로 검색해 대략 5번 정도 클릭한 뒤 결제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카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처넣어야 하는 터라 일의 속도를 위해 수십 건을 일괄결제하려다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일괄결제말고 내 빚이나 일괄변제해주면 좋겠….)
할 일은 산더미인데 뭐하나 도와주는 게 없구나 싶었습니다.
휴대전화에 있는 명태균 번호로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형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가출하려는 덕훈씨의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삽질을 권했습니다.
도리 없었습니다.
꾸역꾸역 삽질하는 수밖에.
다음날 현지 ‘임장’을 위해 덕훈씨가 저녁 차편으로 창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산단 후보지 지정 이후 현지 분위기와 거래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지 부동산에 기자라고 말하지 말고 땅을 보러 왔다고 얘기하라고 일렀는데 내심 걱정이 앞섰습니다.
더벅머리 덕훈씨 입성이 땅 보러 온 사람이기보다, 강력계 형사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형사도 땅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부동산 중개인들은 투자가치를 얘기하며 적극적으로 땅을 사라고 권했다고 했습니다.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 김영선 의원 당선 이후에 해결됐다고도 했습니다.
공무원들도 땅을 샀다고 귀뜸했습니다.
(진짜 형사라고 생각한 건가.) 기사에 쓸 사진 촬영도 해야 했던 덕훈씨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손가락으로 후보지를 가리켜 달라고 하니 “이 나이에 무슨 사진”이냐며 “기력이 없어서 설 수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어르시인~. 부탁 좀 드릴게용~.”
후덕한 덕훈씨가 아양을 떨자 어르신들이 ‘별 미친 놈 다 보겠네~’라는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줬다는 후문. 덕훈씨나 어르신이나 고생이 많았습니다.
모두 ‘명태’ 때문입니다.
뻘짓은 저자들이 했는데 삽질은 우리들이 하네.
업무량과 인력난 호소에 국장은 마감을 일요일까지로 연장하며 한결같은 김한결씨를 추가로 투입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충범씨는 아들과 이름이 같은 한결씨가 온다며 반가워했습니다.
수요일 오후, 2500여개 번지를 모두 추출한 뒤, 본격적인 등본 발급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등본을 떼던 충범씨가 말했습니다.
“선배, 명씨가 있어요.” 뭐라고? 명을 쫓으라는 명 때문에 명이 재촉되고 있는데 명씨가 있다고? 드디어 명씨 친인척을 찾은 것인가. 멈춘 줄 알았던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습니다.
확인 결과, 명씨는 2명이었습니다.
49년생 명A과, 85년생 명B였습니다.
명A는 2005년 8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7**번지에 해당하는 2천여㎡의 필지를 박**씨로부터 샀습니다.
저희 취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명B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는 의창구 동읍 화양리 일대 9필지(6천여㎡) 땅 가운데 8필지를 임**씨에게 샀고 1필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전소유주였습니다.
거래가 이뤄진 시점도 김영선 의원 당선 후인 2022년 7월부터 창원산단이 후보지 발표 직전인 지난해 2월까지로 공교로웠습니다.
지난해 3월17일 창원시는 해당 후보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뭔가 냄새가 났습니다.
전국에 2만여명 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성인 명씨가 후보지에 땅을 갖고 있다면 명태균과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말입니다.
명태균은 자신이 부모 없이 삼촌 손에 자랐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B는 명태균의 사촌동생? 궁금증이 이어졌습니다.
명태균과 명B의 관계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인줄~.)
나머지 3명이 등본 발급과 엑셀작업을 병행하는 사이, 제가 둘의 관계를 팠습니다.
등본에 나오는 명B 주소지의 등기부 등본을 떼봤습니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명C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49년생 명씨 주소지 등기부 등본도 뗐습니다.
명태균 전현 주소지 등기부등본을 모조리 뗐습니다.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명태균과 명C의 관련성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명B까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태균과 명C의 관계는 각각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보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발급받을 수 없습니다.
취재는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때 문득, 족보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희귀한 성이기 때문에 혹시나 족보를 구한다면 명태균과 명C가 함께 나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 족보야!” 소리치는 나를 보고 충범씨가 말했습니다.
“족발이라고요?”
고문서에서 정보를 찾다 결국 못 찾은 두 남자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챗GPT가 그렸다.
명씨 족보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습니다.
검색해보니 국립중앙도서관이 다양한 성씨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일제강점기 때나 해방 직후 만들어진 고문서들이었습니다.
명씨 족보가 있을 만한 곳이 또 있었습니다.
종친회였습니다.
경기 파주시에 있는 명씨 종친회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거리뷰로 보니 논밭 한 가운데 2층집이 사무실이었습니다.
파주를 가야 하나.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그토록 불가능해 보였던 등본 발급과 엑셀작업은 마무리돼가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전, 한참 망설임 끝에 대학동기 명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의 10여년 만이었습니다.
다행히 번호는 그대로였습니다.
다짜고짜 족보 얘길 할 수 없어 근황 얘기를 한 참 나눴습니다.
이후 본론을 꺼내자 동기는 큰집에 족보가 있다며 연락해보고 전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내 명줄은 니가 쥐고 있는거야~. 플리즈)
이튿날 전화 온 동기는 말했습니다.
“너 때문에 돈 10만원 들었다.
”
“왜?”
“전화했더니 사촌형이 ‘주말에 있는 딸래미 결혼식 때문에 전화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졸지에 그렇다고 했지 뭐. 계좌번호 불러주길래 돈 10만원 부쳤어.”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술 세게 쏠게. 족보는?”
“족보 내일 퀵으로 도착해. 오면 연락할게.”
다음날 동기를 만나 족보를 두 번이나 뒤졌지만, 명태균과 명C, 명B는 없었습니다.
아직도 명B가 누구인지 꼭지를 못 땄습니다.
1주일의 시간만에 103만평 등기부등본을 다 떼 엑셀로 정리했다는 사실에 국장은 놀란 듯했습니다.
하지만 명씨 관련자들이 특정되지 못하면서 TF는 해체되고 저희는 모두 원대복귀했습니다.
저희의 삽질은, 그냥 삽질이었습니다.
3회에 걸쳐 쓴 이 뒷얘기는 결과적으로 취재 실패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9필지 땅을 산 명B의 정체가 아직도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언젠가, 혹시나, 이 취재 실패기의 또다른 뒷이야기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약은 없습니다.
그러던 이달의 어느 아침, 부장으로부터 또 불길한 문자가 왔습니다.
“선배~. 국장 호출인데요. 오후에 회사로 들어오실 수 있으실까요?” <끝>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
newstomato.com | 오승훈 기자
(태균이형~. 그냥 좀 알려주면 안 될까?)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마지 못해 응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챗GPT가 그렸다.
등본 발급을 위해선 지번 파악이 먼저 돼야 했습니다.
주말 밤낮으로 지번이 나온 이음지도를 출력해 오려 붙이고 소거해가며 추출하니 어느덧 월요일 오후. 전제 2500여개 지번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찾아낸 상황.(국장 보고 계시죠?) 데드라인까지는 하루 반나절이 남은 시점에서, 두 명은 지번을 마저 찾고 한 명은 등본을 발급했습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지났을까. 등본 발급하던 덕훈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악~~ 다 날라갔어요.” 헉. 무엇이 다 날라갔다는 말인가. 그동안 추출한 우리의 금쪽같은 번지가 번지점프라도 했다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안 돼~~~.
알고 보니 등본을 일괄로 발급받으려 지번별 검색 물건 70여건을 대법원 사이트 장바구니 같은 데에 모아뒀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자동 로그아웃이 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도 로그아웃하고 싶….) 등본 한 통을 발급받으려면 번지수로 검색해 대략 5번 정도 클릭한 뒤 결제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카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처넣어야 하는 터라 일의 속도를 위해 수십 건을 일괄결제하려다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일괄결제말고 내 빚이나 일괄변제해주면 좋겠….)
할 일은 산더미인데 뭐하나 도와주는 게 없구나 싶었습니다.
휴대전화에 있는 명태균 번호로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형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가출하려는 덕훈씨의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삽질을 권했습니다.
도리 없었습니다.
꾸역꾸역 삽질하는 수밖에.
다음날 현지 ‘임장’을 위해 덕훈씨가 저녁 차편으로 창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산단 후보지 지정 이후 현지 분위기와 거래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지 부동산에 기자라고 말하지 말고 땅을 보러 왔다고 얘기하라고 일렀는데 내심 걱정이 앞섰습니다.
더벅머리 덕훈씨 입성이 땅 보러 온 사람이기보다, 강력계 형사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형사도 땅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부동산 중개인들은 투자가치를 얘기하며 적극적으로 땅을 사라고 권했다고 했습니다.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 김영선 의원 당선 이후에 해결됐다고도 했습니다.
공무원들도 땅을 샀다고 귀뜸했습니다.
(진짜 형사라고 생각한 건가.) 기사에 쓸 사진 촬영도 해야 했던 덕훈씨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손가락으로 후보지를 가리켜 달라고 하니 “이 나이에 무슨 사진”이냐며 “기력이 없어서 설 수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어르시인~. 부탁 좀 드릴게용~.”
후덕한 덕훈씨가 아양을 떨자 어르신들이 ‘별 미친 놈 다 보겠네~’라는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줬다는 후문. 덕훈씨나 어르신이나 고생이 많았습니다.
모두 ‘명태’ 때문입니다.
뻘짓은 저자들이 했는데 삽질은 우리들이 하네.
업무량과 인력난 호소에 국장은 마감을 일요일까지로 연장하며 한결같은 김한결씨를 추가로 투입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충범씨는 아들과 이름이 같은 한결씨가 온다며 반가워했습니다.
수요일 오후, 2500여개 번지를 모두 추출한 뒤, 본격적인 등본 발급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등본을 떼던 충범씨가 말했습니다.
“선배, 명씨가 있어요.” 뭐라고? 명을 쫓으라는 명 때문에 명이 재촉되고 있는데 명씨가 있다고? 드디어 명씨 친인척을 찾은 것인가. 멈춘 줄 알았던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습니다.
확인 결과, 명씨는 2명이었습니다.
49년생 명A과, 85년생 명B였습니다.
명A는 2005년 8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7**번지에 해당하는 2천여㎡의 필지를 박**씨로부터 샀습니다.
저희 취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명B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는 의창구 동읍 화양리 일대 9필지(6천여㎡) 땅 가운데 8필지를 임**씨에게 샀고 1필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전소유주였습니다.
거래가 이뤄진 시점도 김영선 의원 당선 후인 2022년 7월부터 창원산단이 후보지 발표 직전인 지난해 2월까지로 공교로웠습니다.
지난해 3월17일 창원시는 해당 후보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뭔가 냄새가 났습니다.
전국에 2만여명 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성인 명씨가 후보지에 땅을 갖고 있다면 명태균과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말입니다.
명태균은 자신이 부모 없이 삼촌 손에 자랐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명B는 명태균의 사촌동생? 궁금증이 이어졌습니다.
명태균과 명B의 관계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인줄~.)
나머지 3명이 등본 발급과 엑셀작업을 병행하는 사이, 제가 둘의 관계를 팠습니다.
등본에 나오는 명B 주소지의 등기부 등본을 떼봤습니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명C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49년생 명씨 주소지 등기부 등본도 뗐습니다.
명태균 전현 주소지 등기부등본을 모조리 뗐습니다.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명태균과 명C의 관련성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명B까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태균과 명C의 관계는 각각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보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발급받을 수 없습니다.
취재는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때 문득, 족보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희귀한 성이기 때문에 혹시나 족보를 구한다면 명태균과 명C가 함께 나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 족보야!” 소리치는 나를 보고 충범씨가 말했습니다.
“족발이라고요?”
고문서에서 정보를 찾다 결국 못 찾은 두 남자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챗GPT가 그렸다.
명씨 족보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습니다.
검색해보니 국립중앙도서관이 다양한 성씨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일제강점기 때나 해방 직후 만들어진 고문서들이었습니다.
명씨 족보가 있을 만한 곳이 또 있었습니다.
종친회였습니다.
경기 파주시에 있는 명씨 종친회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거리뷰로 보니 논밭 한 가운데 2층집이 사무실이었습니다.
파주를 가야 하나.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그토록 불가능해 보였던 등본 발급과 엑셀작업은 마무리돼가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전, 한참 망설임 끝에 대학동기 명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의 10여년 만이었습니다.
다행히 번호는 그대로였습니다.
다짜고짜 족보 얘길 할 수 없어 근황 얘기를 한 참 나눴습니다.
이후 본론을 꺼내자 동기는 큰집에 족보가 있다며 연락해보고 전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내 명줄은 니가 쥐고 있는거야~. 플리즈)
이튿날 전화 온 동기는 말했습니다.
“너 때문에 돈 10만원 들었다.
”
“왜?”
“전화했더니 사촌형이 ‘주말에 있는 딸래미 결혼식 때문에 전화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졸지에 그렇다고 했지 뭐. 계좌번호 불러주길래 돈 10만원 부쳤어.”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술 세게 쏠게. 족보는?”
“족보 내일 퀵으로 도착해. 오면 연락할게.”
다음날 동기를 만나 족보를 두 번이나 뒤졌지만, 명태균과 명C, 명B는 없었습니다.
아직도 명B가 누구인지 꼭지를 못 땄습니다.
1주일의 시간만에 103만평 등기부등본을 다 떼 엑셀로 정리했다는 사실에 국장은 놀란 듯했습니다.
하지만 명씨 관련자들이 특정되지 못하면서 TF는 해체되고 저희는 모두 원대복귀했습니다.
저희의 삽질은, 그냥 삽질이었습니다.
3회에 걸쳐 쓴 이 뒷얘기는 결과적으로 취재 실패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9필지 땅을 산 명B의 정체가 아직도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언젠가, 혹시나, 이 취재 실패기의 또다른 뒷이야기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약은 없습니다.
그러던 이달의 어느 아침, 부장으로부터 또 불길한 문자가 왔습니다.
“선배~. 국장 호출인데요. 오후에 회사로 들어오실 수 있으실까요?” <끝>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