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도 개풍군 마을 일대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나마 레퍼토리를 바꿔서 밤에는 주로 귀신소리가 나옵니다.
"
지난 9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전망대 관계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 대남확성기에서 내보내는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 동물 울음 소리, 음산한 기괴음 등 온갖 소음이 계속되는 중이었습니다.
민간인통제선 밖이지만 강 건너 북한 개풍군과 최단거리가 460m에 불과한 데다 전면이 개방돼 있어 북한 확성기 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전망대를 방문한 한 서울시민은 "서울에서 자유로 타면 40분이 채 안 걸리는 이곳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놀라워합니다.
같은 날 오후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파주시 장단면 도라 전망대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북의 온갖 소음에 남에서는 민요 '쾌지나 칭칭나네'와 아이돌그룹 아일릿의 '럭키걸 신드롬'으로 맞섰습니다.
"DMZ 내 대성동은 지옥 같은 상황"
도라산 전망대에서 만난 '통일촌' 한 주민은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우리 마을(통일촌)도 힘들지만, 대성동 마을은 정말 지옥 같은 상황"이라고 전하는데요, 같은 파주이지만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위치해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00m 떨어진 대성동 마을이 북한 확성기 소음에 극심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의 괴소음은 지난 7월 말부터 파주시를 포함해 경기도, 강원도, 인천시 접경지역 대부분 지역에서 확성기로 방송되고 있는데요. '대북 전단 살포-대남 오물풍선 살포-대북 확성기 방송'의 악순환 국면에서 가동됐습니다.
벌써 4개월이 넘었고 일부 지역은 24시간 내내 괴소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딸과 3학년 아들을 둔 강화군 송해면 주민 안미희 씨가 무릎 꿇고 오열하면서 대책 마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방송 소음으로 인해서 저희 일상은 무너졌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지 못한다.
딸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도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자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북한 확성기 괴소음 피해 참고인으로 나온 강화군 송해면 주민 안미희씨가 무릎을 꿇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북, 8일부터 'GPS 교란'…소형 어선, '민항기 운항'에 직접 영향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교란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연평도 등 서해를 중심으로 북한의 GPS 교란 공격은 지난 8일부터 12일 현재까지 닷새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언론브리핑에서 "오늘도 (북한의) GPS 교란이 일부 지역에서 있었다"며 "서해 도서 지역에 있었고 이른 새벽에 간헐적으로 약한 강도로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운항을 GPS에 의존하는 소규모 어선들은 이런 GPS 전파 교란에 직접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미 여객선과 어선, 민항기 수십 대의 운항 등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합참은 지난 9일 "북한은 GPS 도발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이로 인한 이후의 모든 문제는 북한에 책임이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월 말에서 6월 초에도 닷새 연속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GPS 전파 교란 공격을 한 바 있는데요. 당시 교란은 이 시기 교란 공격은 신호의 방향이나 출력 강도 등으로 미뤄 남쪽을 향한 도발이라는 점이 명백했던 데 비해 최근 공격은 당시와 비교하면 우리 군에 포착되는 출력 강도가 낮고 지속 시간이 짧아 본격적인 공격 시도로 보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합참은 최근 북한의 GPS 전파 교란은 주로 무인기 출현에 대비한 자체 훈련 목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으로서는 저비용 고효율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며 "평양 무인기 사건에 대한 맞대응으로,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 확산을 통한 남남갈등 유도 △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부각 △서해 분쟁수역화 탐색전 등이 그 목적"이라고 분석합니다.
넓혀보면 지난 5월 오물 풍선부터 시작된 북한의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에 따른 피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지난 10월 22일까지만 해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활주로 운영이 17차례 중단되면서 항공기 172대의 이착륙이 지연됐습니다.
'개방형 통상국가'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합니다.
정부, '경고'만 할 뿐 사실상 손 놓고 있어
하지만 정부는 '경고'만 남발할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습니다.
방음 시설 설치, 심리지원 버스 투입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실효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대북 전단 살포는 사실상 묵인하고 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부승찬 의원은 "정부에 대해 항공안전법 등으로 대북 전단을 규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 판결 뒤에 숨어버렸다"며 "지난해 9월 헌재 판결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처벌 조항을 위헌이라고 했을 뿐 살포를 막는 것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다양한 회색지대 전술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가해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확성기 괴소음 등 회색지대 전술은 특별한 상황 변동이 없는 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