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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정치 이시바가 야스쿠니만 안 가면 되는 것일까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가 1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온건파", "한·일 역사인식 비둘기파", "한국에 호재"는 물론이고 "(한국식) '소맥 폭탄주'를 49잔까지 마셔봤다고 술 실력을 자랑하더라.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는 등 호평이 많습니다.

 

오랜만에 '친한파' 인사가 총리가 된 데다, 2008년부터 총리 경쟁에 나선 뒤 2012년과 2018년에는 '일본 보수·극우파의 총아'고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패했고 그 이후에도 '아베파'에 밀리다가 '4전 5기' 끝에 총리 자리를 차지한 비주류라는 개인적 사연이 호감을 얻은 겁니다.

 

"전쟁 책임 외면하는 일본이 문제의 근원"

 

이시바 총리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다"(2017년 5월 <동아일보> 인터뷰)고 했고, 2019년 문재인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우리나라가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에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4대째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적 성향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대부분 우익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1986년에 최연소로 중의원에 처음 당선한 이래 현재까지 12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이시바 총리의 한쪽 면일 뿐입니다.

 

이시바 총리가 총리 경선 직전인 지난 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정책의 장래'는 그가 '안보 매파', '안보 오타쿠'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현재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세를 "미국, 일본, 한국 간 안보 협력 관계가 심화되고, 정상회담 정례화, 연합 훈련, 정보 공유 등 많은 틀이 제도화되어 3국 동맹이 실질적인 '3국 동맹'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이 '한·미·일 동맹'이라고 표현했다가 당 내부까지 비판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수정한 한국과는 인식 차이가 큰 겁니다.

"아시아판 나토 핵무기 도입-괌 자위대 주둔"…확실한 '안보 매파'

 

그는 특히 "중국, 러시아, 북한의 핵 동맹에 대한 억지력을 보장해야 하는 '아시아판 나토'(Asian version of NATO)가 이를 보완해야 한다"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주창하는가 하면 이 기구가 "미국의 핵무기 공유 또는 역내 핵무기 도입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베 전 총리조차 거스르지 못했던 '비핵 3원칙'(핵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영토에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거스르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기본법' 제정과 함께 전력 보유를 금지한 현행 '평화 헌법' 개정까지 가야 한다고 합니다.

 

한미일 해군이 지난 4월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는 또 "미국이 일본을 '방어'하고 일본은 미국에 '기지 제공'의 의무를 지는 현재의 비대칭적인 미·일 안보조약을 '보통 국가' 간 조약으로 개정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며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다짐합니다.

이와 관련 "주일미군 지위 관련 협정인 미·일 지위협정을 개정하면, 자위대를 (미군의 동아시아 핵심 기지인) 괌에 주둔시켜 억지력 강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평화 헌법 개정도 주장…"미·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사명"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 전략을 갖고 미국과 동등한 조건으로 독자적인 전략과 전술을 공유할 수 있을 때까지 안보 측면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한 그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이시바 시게루는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국가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기고문을 끝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이시바정부'(the Ishiba administration)라는 표현을 써, 집권하면 이 구상들을 실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시바 총리는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라이벌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안보 전략에서는 아베가 창안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안으면서 전 세계적 수출품이 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따르고 있는 겁니다.

수동적 수용 정도가 아니라 미국도 부담감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판 나토', '핵무기 도입', '자위대 괌 주둔'까지,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흔드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겁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미지수입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나토' 형태가 아니라 소다자 동맹 구조를 확대한 '격자형(lattice-like) 구조'를 만들고 있고, 핵 피폭 경험이 있는 일본 국민들은 핵무기 도입 반대 여론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일 정부는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공동 문서를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협정 60주년(6월 22일)을 맞아 '신한일공동선언', '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하겠다는 겁니다.

 

과거사 '물컵' 채우면서…실질적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한다면?

 

만약 이시바 총리가 이 자리를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물컵 절반'을 채우려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편으로, 미·영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킨 미·일 동맹을 축으로 실질적인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하는 무대로 만들려 한다면, 윤석열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방위상을 포함해 국방 관련직을 4번이나 맡아 대표적인 '국방족'으로 불리는 그는 새 내각에 방위상 출신 인사 3명을 기용했습니다.

본인까지 포함하면 내각에 방위상 출신이 4명이나 포진하는 매우 이례적 모습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안 간다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계속 사과한다고 '얼씨구나' 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newstomato.com |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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