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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정치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일본은 뒤통수 치지 않았다


지난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일본 정부와 별도로 사도 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려 희생자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이 파행으로 끝나자, 윤석열정부가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고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해온 대로 계속했을 뿐입니다.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 자체가 그랬습니다.

사도광산 등재 문제에 대한 한·일 간 논의 과정을 묻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 질의에 지난 8월 6일 외교부는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 조선인 노동자 1500여명이 강제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사실을 일본이 부인한 겁니다.

그런데도 윤석열정부는 등재에 동의해 줬습니다.

 

일 '강제동원' 사실 부인했는데도…윤석열정부 '등재 찬성'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이를 질책하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실제적인 이행조치를 확보해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축적해야 한다"며 "국민 한풀이하듯 등재에 반대해 자폭하듯 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좋은 거냐"고 반발했습니다.

등재 반대가 '국민 한풀이', '자폭'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는 "강제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행 조치를 확보했다"고 했지만 강변에 불과합니다.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기록된 전시물을 설치하겠다고 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강제동원'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고, 일본 측 추도식에서 일본 정부 대표는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추도식은 추모보다는 일본 근대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사도광산 피해자 유족들의 항공편, 숙소 등 일본 방문에 따른 경비도 모두 한국이 부담했습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업무처리입니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사실을 포기하고, 이를 지적하는 이들을 오히려 '자폭'하는 거냐고 윽박지르면서, 일본을 '변호'해 주니 말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성'문제는 2015년 나가사키현 군함도(하시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이미 정리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군함도 등재 결정 회의에서 일본 측 유네스코 대사가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동원을 당해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발표해 등재가 확정되자, 그 다음 날 바로 일본 외상이 이 발표가 ‘강제노동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강제성을 부인해 버렸습니다.

2020년 군함도에 대해 알리는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군함도가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강하게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하면서 개선방침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을까요?

 

조태열 장관은 당시 외교부 2차관으로 이 문제에 대한 주무 차관이었습니다.

외교부에서 누구보다 전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는 외교관 경력 35년의 베테랑 중 베테랑입니다.

그런데 왜 이럴까요?

 

윤석열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내걸고 벌인 첫 작업이, 지난해 3월에 발표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이었습니다.

일제 전범기업들이 아니라 제3자인 한국 측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가해자 일본은 어디로 갔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방안이었습니다.

 

"대통령실, 3자 변제안 '일본에 조건 없이 추진하라' 했다"

 

"강제징용 문제만 해도 제3자 변제 방식을 추진하던 지난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본에 조건 없이 제안하고 추진하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 입장 선회에 일본 측이 되레 당황해서 '정말 원하는 게 없느냐고 수차례 확인했다'고 한다"(<동아일보> 2024년 10월 1일)

 

이 기사는 사실로 보입니다.

제3자 변제안 발표 직후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공식 발표 전 일본 쪽과 비공개로 협의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며 "(일본 정부 쪽에서)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이것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반응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일본과 아예 협상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일마'(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의 정수라 할 만합니다.

한국이 알아서 '중일마'하는데 일본이 한국의 이를 마다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윤 대통령이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개 면죄부까지 준 마당에 말입니다.

현재 일본 총리가 이시다 시게루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12번 만났던 기시다 후미오라 해도 일본의 행태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은 '예견된 참극'보다는 '자초한 참극'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도광산 문제와 관련한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감 표명'한다면서 '초치'도 안해…조태열 '형식 중요하지 않아"

 

윤석열정부는 '참극'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겁니다.

아무리 뻔히 다 드러냈다고 해도 항의조차 이렇게 무성의하게 하는 건, 해도 너무합니다.

유감 표명이라면서 '초치' 안 합니다.

조태열 장관은 일본 외상을 만나 유감 표명을 했다고 했으나, 당시 외교부는 양국 장관이 협력을 강조했다고 했을 뿐 조 장관이 유감을 표명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조 장관은 일본 측 인사를 '초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보통 형식, 의전이 전부라고 하는 외교에서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신박한 답변입니다.

오히려 일본과 '형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관계가 됐다는 '자백'이 아닐까요? 

 

이번 사태에 조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본인과 대통령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를 한·일 '동맹'의 하위범주로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간의 상황이 이러니 오히려 일본이 한국이 추도식에 불참했다고 유감표명을 하고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윤석열정부는 "일본이 내년부터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을 개최할 수 있도록 지속 촉구해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추도식이 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열린다 해도 올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전 예고'로 들립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newstomato.com | 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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