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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IT [뉴스토마토프라임] 레거시 미디어의 존재 이유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정치를 '칼로 싸울 것을 말로 싸우도록 바꾸는 것'이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정치를 보면 행여 '말로 싸울 것도 칼로 싸우도록' 바꿀까봐 염려스럽습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정국으로 흐르면서 진영 간 갈등이 그야말로 극에 달하는 양상인데요. 갈등을 해소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 본령의 의미는 그 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든 간에 사실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사람 숫자만큼이나 서로 간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되, 경청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죠.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논쟁은 반드시 사실 기반으로 이뤄져야 하며, 합의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의 숙의 시간이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전제들이 최근엔 거의 지켜지지 않는 듯합니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는 누가 목소리가 더 큰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흐름이 논쟁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르익지 않은 사고, 아무말 대잔치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뜬금없이 세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합의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고, 오로지 상대방을 이기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바야흐로 정치적 갈등은 전국민을 대상 삼아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 흐름 속 달라진 미디어환경이 그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겁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뉴스뿐만 아니라 유튜브 속 가짜 뉴스까지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누구나 매체가 될 수 있는 세상. 여론전도 실시간으로 이뤄집니다.

가령 지금 당장 포털의 아무 기사나 골라 댓글창을 살펴보십시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막론하고 기사 댓글이 한번 시작되면 기승전'정치적 견해'로 이어지곤 합니다.

좋게 말해 정치적 견해이지 실상은 정치적 견해를 빙자한, 배설에 가까운 글들이 많습니다.

인터넷은 이처럼 정치의식 과잉의 시대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사실관계와 논리적 옳고 그름은 배제하는 방향으로 말이죠.

 

과연 디지털기술의 진보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민의식의 후퇴로, 나락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인터넷 환경이 시민다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령 이번 비상계엄의 경우도 실시간 중계되는 과정에서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정보가 항상 유익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인터넷이란 곳은 유의미한 정보(데이터)와 그렇지 못한 정보가 함께 넘쳐나는 공간임을 인식하고 비판적 사고를 가다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최근 탄핵정국 속 팩트 기반의 담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레거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입장차는 물론 있지만, 헌법의 위기 속 보수지든 진보지든 가리지 않고 객관적 진실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모처럼 엿보이는 중입니다.

고무적인 일임은 분명한데 일면 역부족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디어 권력의 상당부분이 유튜브로 이미 넘어간 듯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입니다.

앞으로는 더한 싸움이 시작될 테니까요. 유튜브발 가짜뉴스를 넘어 머지않아 AI발 가짜뉴스와 맞서야 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겁니다.

현 레거시 미디어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팩트를 중요 가치로 두는 마지막 미디어 세대로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 미디어의 득세 속 레거시 미디어의 존재감은 어쩌면 계속해서 희미해져만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정치적 합의 도출을 위한 도구 역할만큼은 포기하지 않기를 부디 바래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newstomato.com |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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