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우연찮게 알고리즘에 끌려 보게 됐습니다.
제목은 ‘한나 아렌트’. 독일계 유대인으로 철학자와 정치 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책임자였던 나치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스라엘 재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을 악마라고 여겼습니다.
그럴만도 했습니다.
600만명이 넘는 유럽의 유대인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집단적으로 없앨 것인가에 몰두하고, 방법을 체계화시켜 실행에 옮겼으니까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패망 이후 15년간 잠적한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붙잡아 비행기에 태워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건 1960년이었습니다.
재판은 1961년 4월 11일 시작됐는데, 아이히만은 사형을 선고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형이 집행됐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 뉴요커의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재판 전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후 아이히만을 지켜본 과정을 책으로 펴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입니다.
비상계엄이 발표된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서 도출된 개념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입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펼칩니다.
명령받은 대로 일을 해 도의적인 책임은 있겠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강변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대목은 아이히만은 악마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명령에 따라 주어진 일을 잘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식을 지닌 사람. 자신이 행한 일은 ‘악’이 아닌 그저 해야만 했던 것들.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보내져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아이히만에게는 무의미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은 평범함이라고 말합니다.
명령에 대해 생각없이 복종한 자체가 ‘악’입니다.
아이히만은 나치 입장에서는 유능한 공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백만명을 학살하는 데 대해 고민과 사유하지 않고 ‘내려온 명령’에만 충실했다고 악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25년. 우리는 ‘악의 평범성’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주어진 책무”라는 경호처도, 군인이라서 따라야만 했다는 ‘반란 가담자’도, 국가의 근본을 흔든 ‘내란 수괴’ 윤석열 씨 체포를 막는 사람들 모두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항변은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적 불이익이 눈 앞에 있는데, 당신이라면 ‘악의 평범성’을 떨치고 행동할 수 있겠느냐고. 맞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일 겁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악의 평범성’을 이해하지만, 선뜻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 지도 모르는 2025년의 시대 상황. 내면에 뿌리 잡은 ‘악의 평범성’이 자꾸 떠오르는 나날입니다.
오승주 기자
newstomato.com | 오승주 기자
제목은 ‘한나 아렌트’. 독일계 유대인으로 철학자와 정치 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책임자였던 나치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스라엘 재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을 악마라고 여겼습니다.
그럴만도 했습니다.
600만명이 넘는 유럽의 유대인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집단적으로 없앨 것인가에 몰두하고, 방법을 체계화시켜 실행에 옮겼으니까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나치 패망 이후 15년간 잠적한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붙잡아 비행기에 태워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건 1960년이었습니다.
재판은 1961년 4월 11일 시작됐는데, 아이히만은 사형을 선고받고, 1962년 5월 31일 교수형이 집행됐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미국 뉴요커의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재판 전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후 아이히만을 지켜본 과정을 책으로 펴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입니다.
비상계엄이 발표된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서 도출된 개념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입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펼칩니다.
명령받은 대로 일을 해 도의적인 책임은 있겠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강변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대목은 아이히만은 악마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명령에 따라 주어진 일을 잘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식을 지닌 사람. 자신이 행한 일은 ‘악’이 아닌 그저 해야만 했던 것들.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보내져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아이히만에게는 무의미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은 평범함이라고 말합니다.
명령에 대해 생각없이 복종한 자체가 ‘악’입니다.
아이히만은 나치 입장에서는 유능한 공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백만명을 학살하는 데 대해 고민과 사유하지 않고 ‘내려온 명령’에만 충실했다고 악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25년. 우리는 ‘악의 평범성’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주어진 책무”라는 경호처도, 군인이라서 따라야만 했다는 ‘반란 가담자’도, 국가의 근본을 흔든 ‘내란 수괴’ 윤석열 씨 체포를 막는 사람들 모두 ‘악의 평범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항변은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적 불이익이 눈 앞에 있는데, 당신이라면 ‘악의 평범성’을 떨치고 행동할 수 있겠느냐고. 맞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일 겁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악의 평범성’을 이해하지만, 선뜻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 지도 모르는 2025년의 시대 상황. 내면에 뿌리 잡은 ‘악의 평범성’이 자꾸 떠오르는 나날입니다.
오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