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었습니다.
퇴근길 케이크 전문점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딸기가 빼곡히 박힌 생크림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죠.
맛있게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여느때와 같은 하루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잠시나마 남편과 둘 만의 자축의 시간을 가지려던 찰나, TV에서는 뉴스 속보가 들려왔습니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 TV에서는 결의에 찬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거대 야당, 예산 삭감, 입법 폭주, 반국가세력…
늘상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던 단어들이기에 '왜 굳이 저런 얘기를 이 야밤에 하고 있나' 싶던 순간, 귀에 박힌 한 단어.
'계엄'
악몽같은 한 달의 서막이었습니다.
각종 집기들로 가로막힌 본청 후문, 깨진 유리 파편과 끊어진 출입통제 플라스틱 체인…
6시간만에 해제된 계엄의 흔적은 이튿날 출근길에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1년 내내 아수라장 같았던 국회는 한층 더 거친 말들이 오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2024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분노에 찬 시민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으로 밀려들었던 것도 며칠 뿐. 안전을 이유로 출입증을 소지한 사람들만이 국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1미터 남짓한 담장을 경계로 고요한 국회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은 묘한 대조를 이뤘죠.
두 번의 표결 끝에 탄핵안이 통과됐을 때만해도 모든 비정상이 금방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을사년 새해가 밝은지 사흘째가 되는 오늘까지도 내란 수괴는 잘못이 없음을 항변만 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하고도 여전히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지요.
그 사이 연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여행을 다녀오던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도 발생했습니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이토록 몸과 마음이 시린 겨울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유가족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공동취재)
그래도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저력을 모아왔던 국민입니다.
계엄과 탄핵, 참사를 거치는 난국 속에서도 국민들은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1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18세 이상 69세 미만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67.6%)은 가장 신뢰하는 집단으로 '시민'을 꼽았습니다.
기업(14.8%), 정부(7.7%), 국회·정당(4.3%)을 지목한 응답을 합친 것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를 묻는 질문과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주체'를 묻는 질문에서도 시민을 꼽은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시련은 지나갈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국민들의 단합만이 극복의 돌파구가 되겠죠.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대한민국의 봄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