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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IT 공포 게임으로 '화해와 미래' 봤다


※이 글에는 '사일런트 힐 2(개작판)' 결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연말은 화해와 내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결말을 본 공포 게임이 특이한 방식으로 연말과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 게임은 제가 공략집 보며 힘들게 진행했던 '사일런트 힐 2(개작)'입니다.

감독은 마테우시 레나르트, 제작사는 코나미입니다.

2001년 출시된 원작을 개작해 올해 10월 출시했습니다.

원작은 시리즈 통틀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 이번 개작판은 출시 직후 100만 장이 팔렸습니다.

 

주인공 제임스는 3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메리(Mary)가 보낸 편지를 받고 버려진 마을 '사일런트 힐'을 찾아갑니다.

게임의 목표는 제임스가 이 마을에 있는 둘만의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도록 하는 겁니다.

 

'사일런트 힐 2' 디스크 앞면(사진 왼쪽)과 뒷면. (사진=이범종 기자)

 

하지만 난관이 많습니다.

한때 사람이었을 법한 괴생명체 무리를 뚫고 각종 퍼즐도 깨면서 길을 터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분 나쁜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더러운 하수구에 팔을 넣어 물건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버튼 한 번 누르면 주인공이 알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번 X 버튼을 누르면 팔을 조금 넣고, 다시 한번 눌러야 주인공이 역겨움을 참으며 팔을 깊이 넣어 아이템을 얻는 식입니다.

깊은 구덩이 안으로 뛰기 전에도 비슷한 과정을 겪습니다.

한 번 X를 누르면 몸을 앞으로 숙이고, 한두 번 다시 눌러야 제임스가 결심하고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청각적인 불쾌함도 제대로 구현됐습니다.

제임스는 게임 초반 마을에서 아내가 남긴 라디오를 얻게 됩니다.

괴물이 근처에 있으면 라디오에서 잡음이 나기 시작하고, 그게 가까워질수록 점차 소리가 커지는데요. 이 소리는 TV 스피커가 아니라, 게이머가 손에 쥔 듀얼 센스 컨트롤러에서 나옵니다.

제작진은 이런 식으로 제가 직접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잡음을 듣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공포와 불쾌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되죠.

 

저는 게임 중반 이후 '월간 게이머즈' 11월호에 실린 공략집 도움을 받아 겨우 후반부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게임의 결말을 크리스마스 낮에 보게 됐는데요. 이날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사일런트 힐 2는 의외로 연말에 생각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사일런트 힐 2' 디스크. 디스크를 꺼내면, 그 뒤에 사일런트 힐 마을 지도가 보인다.

(사진=이범종 기자)

 

제임스는 아내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찾아, 호텔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보관된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자신이 외면했던 진상을 마주합니다.

 

사실은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지친 제임스가 베개로 아내의 얼굴을 눌러 살해했고, 메리가 죽은 시점은 3년 전이 아닌 최근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 팬들이 정리한 문서를 읽으니, 게임 전체가 제임스의 내면을 돌아보는 여정이었습니다.

각종 괴물의 외모는 제임스 부부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특히 게임 속 괴물 중 가터벨트를 착용한 간호사 괴물은, 아내의 병 때문에 억눌린 제임스의 성욕과 그에 대한 죄책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시리즈 공식 연표를 보니, 마음속에 어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사일런트 힐에 모인다고 하는데요. 저는 제임스가 게임 내내 깊고 어두운 구멍에 계속 떨어진 이유가 마음속 어둠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다시 결말 이야기를 하죠. 제임스는 호텔에서 아내를 대신하겠다며 다가온 여성과 싸워 이깁니다.

곧이어 제임스의 상상 속에서 침대에 누운 아내가 나타납니다.

 

제임스는 병상에 누운 아내에게 사과합니다.

메리는 고통이 끝나길 바랐다며, 괜찮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메리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증오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메리가 묻습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건데?"

 

그러면서 메리는 "당신이 찾던 거야"라며 편지를 건네줍니다.

이윽고 화면은 마을을 떠나는 제임스를 비춥니다.

 

메리는 편지에서 병을 이유로 제임스에게 신경질을 내 미안하고, 당신과의 행복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과 타인을 위해 "꿋꿋이 살아줬으면" 한다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당신 덕분에 행복했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사건의 진상을 인정한 제임스는 아내의 병원 친구인 여덟 살 소녀 로라와 함께 마을을 떠납니다.

메리의 편지는 제임스가 그토록 받고 싶어 했던 아내의 용서가 아니었을까요.

 

알고 보니 저는 여덟 개에 달하는 결말 중 가장 나아 보이는 내용으로 이 게임을 마무리했습니다.

게다가 고생 끝에 메리에 대한 진실을 확인한 날이 성탄절이니, '메리(Mary) 크리스마스'가 된 셈이죠.

 

제임스는 죄책감을 마주하고 난 뒤에야 사일런트 힐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 게임을 하고 나니,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사일런트 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임스-메리 부부의 극단적인 사례 말고도, 일상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마음속 어둠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우리 모두 새해에는 그동안 마주하기 힘들었던 내면에 다가서고, 그로 인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사일런트 힐 2' 클로징 크레딧 화면과 디스크. (사진=이범종 기자)

 

그런데 사일런트 힐 2 제작진도 자신을 마주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5(PS5) 최적화가 엉망입니다.

프레임 저하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인데요. 특히 주인공이 어딘가에 살짝만 부딪혀도 화면 전체가 '부르르' 떨리기 때문에 멀미가 심해집니다.

저는 이 게임을 하다 어지러워 토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한동안 디스크를 넣기가 무서웠습니다.

공포 게임이 주는 두려움은 게임 안에서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newstomato.com |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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