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금기시됐습니다.
성공만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실패는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곤 했죠.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KAIST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실패학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행사를 통해 실패를 당당히 드러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대전 KAIST에서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실패학회의 주제는 '거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이라는 벽 앞에서 주저앉고 도전을 포기하곤 하는데요. KAIST는 'We regret to inform you'(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돼서 유감입니다)라는 전시를 통해 거절과 실패가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경험임을 보여줍니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망한 과제 자랑대회'입니다.
"내 과제가 가장 망했다"며 자랑하는 이 대회에서는 청중의 큰 호응을 얻은 참가자에게 '치명상', '상상 그 이상', '화려한 비상' 같은 재미있는 상이 수여되는데요. 실패조차도 성과이자 배움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실패를 자랑거리로 승화시키는 이 도발적인 시도는 우리가 실패를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실험실 폭발과 오류, 실패한 가설들이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만들어냈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 넘는 실패를 거듭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필수 과정이며, 때로는 실패 자체가 더 큰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아닐까요. 실패는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자 창의성의 기반이 됩니다.
실패학회는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 문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배우며 다시 일어서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시작일 것입니다.
2024 KAIST 실패학회 행사 중 '망한 과제 자랑대회' 포스터. (이미지=KA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