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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종합 '계엄' 두 글자에 벌벌 떤 어머니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쯤 뮤지컬 동호회 사람들과 공연 연습 뒤 치킨에 맥주 한잔하는 도중 '계엄령' 얘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헛소리냐"며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곧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실시간으로 [속보]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카카오톡에는 온통 '계엄' 얘기가 도배됐습니다.

상황의 심각함을 안 순간 고향인 대구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 사는 아들을 걱정하는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계엄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며 "국회에 지금 군인들까지 갔다고 하니, 당분간 사람들도 만나지 말고 정치 얘기 나누지 말라"며 신신당부했습니다.

특히 "과거에도 국회 다음 타격 대상은 언론이었다"며 "기자로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말도 아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거리에 사람들 지나다닌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답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31년간 살면서 어머니의 잔소리는 숱하게 들었지만, 이랬던 적은 없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질 때도 늘 "마스크 제대로 쓰고 다녀라" "술 절대 마시지 마라" 등 평소 자유분방한 아들을 휘어잡으려는 목청 높은 어머니 모습만 봐왔습니다.

지금처럼 떠는 목소리로 간곡하게 말씀하신 적은 처음입니다.

"어린 시절 박정희·전두환 군사 정부 때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며 국민에 총구를 겨눴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어머니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계엄 사태'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모님과 작년 연말 고향에 내려가 함께 본 <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서도 지나간 슬픈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실시간 국회 상황을 유튜브로 봤습니다.

국회 앞에는 시민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계엄 철폐'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총을 든 계엄군과 경찰이 국회 출입문을 지키고 시민을 가로막았습니다.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집에 도착한 뒤에도 어머니는 10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 먹을 거는 좀 있냐"며 떨던 어머니는 1시가 넘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계엄 선포 155분 만에 가결됐기 때문입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참여한 의원 190명이 전원이 찬성하며 행정부 독재를 막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걱정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내일 꼭 출근하더라도 믿을만한 사람이랑 같이 다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저는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 3시 무렵 겨우 잠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틀이 지난 지금도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뒤 3시간 반 만에 계엄 해제 담화문을 냈을 뿐입니다.

담화문에서도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끝까지 본인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결국 국무 위원은 전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야권 주도로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대통령 사과와 임기 단축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계엄' 두 글자에 어머니는 아직도 떨고 있습니다.

시민은 분노합니다.

외신은 경악했습니다.

대통령만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탄핵이 답입니다.

권력에 눈멀어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대통령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탄핵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참 가슴 아프지만, 민주 사회를 지키기 위해선 다시 한번 용기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저 역시 민주시민의 힘을 믿고 권력에 불복하지 않겠습니다.

 

4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헌정 유린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 촉구, 광주시민 총궐기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만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newstomato.com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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